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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an 22. 2021

매표X이라는 악플을 받다.

장애인의 기차표 값을 내주지 않았던 역무원의 변명

근무 중인 내 모습이 모자이크 되어 기사로 나왔다.

기차역 종합안내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지체장애인의 승차권을 발매한 적이 있다. 장애인 할인을 적용하고 부족액을 결제하려 하는데, 장애인 고객이 가진 현금이 얼마 모자랐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승차권을 끊어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장애인 고객이고, 금액도 몇백 원이어서 결국 표를 끊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동전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의미로 돈을 가져와야 된다고 안내했다. 그래도 돈이 진짜 없다고 하면 '다음부터는 잘 챙겨서 다니셔야 한다'라고 말씀드리고, 표를 그냥 끊어드리는 게 보통 내가 업무를 하는 방식이고 그날도 그랬다.

“돈이 모자라면 승차권을 끊어드릴 수가 없어요. 돈을 더 가져오셔야 해요. 혹시 동전이나 천원짜리가 더 있는지 찾아보시겠어요?”

그래도 표를 달라고 떼를 쓰던 장애인은 '돈이 없으면 표를 끊을 수 없어요.'라는 나의 말을 듣자,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그런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기사에는 ‘장애인이 울었다’고 잘못 묘사되어 있는데, 그 당시 나는 큰 소리를 듣고 많이 당황했었다.



천사 청년과 악마 역무원

그때 장애인 뒤에서 나에게 문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착한 군인 청년이 내게 “부족한 돈이 얼마냐. 돈을 제가 대신 내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장애인을 진정시키며 “표 드릴게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이 모자란 돈 주셔서 끊어 드리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더니 장애인 고객도 그 청년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진정을 하게 됐다.

그 청년이 내민 카드는 하필 결제 불가 카드였고, 그래서 그 청년은 ATM기까지 가서 돈을 뽑아오겠다고 했다. 결국 표는 어떻게 끊었을까? 오래전 경험이라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옆에서 그 소란을 지켜보던 사회복무요원이 몇백원을 자기가 드리겠다고 했고, 나는 돈은 창구에도 있다고 말하고 돈을 받지 않았거나, 그 몇백원을 그냥 힘없이 받았거나 했다. 그 잔돈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이 그 장면을 사진을 찍어 국방부 페이스북에 제보를 한 것 같았다. 군인의 선행은 페이스북에서 널리 알려졌고, 결국 기사화가 되었다. 네이트 포털에서 일일 조회수 3~4위까지 기사가 올랐고 나는 그 기사와 댓글을 읽게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군인의 선행에 대한 것이었지만, 댓글에는 나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매표년'으로 시작하는 비난 댓글이어서 너무 당황해서 캡처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기사를 다시 찾지 못해 그 ‘매표년 댓글’도 다시 찾을 수 없지만 다른 기사에서 비슷한 내용의 몇 가지 악플들은 찾을 수 있었다.



자책감과 모멸감 느끼게 한 몇몇 악플들

‘ㅆㅂ OOO은 보고만 있었냐’
‘왜 여자 직원은 모자이크냐! 남녀 차별이다'
‘매표서 여자분 너무하네. ㅆㄴ이네’
‘매표소 직원 졸라기 냉정하네 나같음 사비로 결제해주것다. ㅉㅉ’



처음으로 받아본 악플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의 악플에도 이렇게 스트레스인데, 이를 자주 경험하는 연예인들이 참 대단하다 느끼기도 했고, 내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없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표 값이 모자란 고객 앞에서 “돈이 부족하다고 하니 그럼 제가 부족한 돈을 내 드릴게요.”라고 바로 말하고 돈을 내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마트에서 계산할 때 돈이 없다고 말하면 계산원이 “그럼 제가 부족한 돈 내 드릴게요.”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돈이 모자랐던 사람이 사회적 약자였고, 내가 돈을 채우고 표를 드린다고 말하기 전에 천사 같은 군인 청년이 돈을 내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악플을 받게 된 것 같다.


종합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원래 매표 담당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 그 당시 내가 본 기사 댓글에 ‘저 매표년이 돈 없으면 표 못 끊어준다고 하는 거 봤음.’이라고 댓글을 쓴 것도 참 무서웠다. 국방부 페이스북에 올라간 제보글이 화제가 되자 이를 그냥 복사해 기사화한 기자들도 미웠다. 얼굴만 모자이크 하면, 그 기사에서 주인공이 아닌 내 모습도 사진에 포함되어 기사화될 수 있는 것일까? 제삼자의 모습이 있는 사진은 아예 기사에서 빼면 어땠을까. 기자의 배려 부족이 아쉽다. 그럼 그 아름다운 기사에서 못된 여직원에 대한 댓글들은 빠졌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앞에서 언급한 에피소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일하다 보면 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난다.

“저 돈이 없는데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요?"

“저 지하철 타고 오다가 교통카드를 잃어버렸는데 그냥 통과할 수 있을까요?”

“지금 돈이 없는데 너무 급하게 차를 타야 해서 그런데 그냥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많은 사람들을 직원 한 명 또는 두 명이서 담당해야 하는 것이 역무원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매번 분실 요금을 징수하여 받아내는 것도 어렵다.

지금 돈이 없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많은 역무원들이 돈을 빌려주고 다시 돌려받지 못한다. 물론, 단 천 원을 빌리셔도 갚으러 오시는 정말 좋은 고객님도 가끔 있다.



이제는 융통성(?) 있게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냥 계속 돈 달라고 진상 부리면, 진상과 싸우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돈 주세요.

이런 선배들의 조언을 내가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연차가 되었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하더라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객응대 근로자는 그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너무 많은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된다. 차라리 약관에 없는 돈을 내어 주고, 부정승차자 단속을 하지 않으면서 복지부동에 철밥통이라는 욕을 먹는 쪽이 한결 편하다.

말도 안 되는 요구와 싸우다가, 결국 화병인지 우울증인지에 걸려 철밥통을 내 발로 차고 나올 뻔한 위기가 많았다. 열차 부정승차자들에게 부가운임을 징수하면서 미친X으로 시작하는 욕을 수없이 먹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들의 미친X이자 그 기사의 매표X은 일을 열심히 할수록 깊은 우울감에 시달렸다.





장애인 고객을 만났던 20대의 나는 부족한 직원이었다. 여유가 없이 바쁜 종합안내 일을 했던 탓에, 장애인에게 자극이 될 만한 말은 하지 말고 바로 표를 주는 센스를 갖추지 못했었다. 이제는 그 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에도 돈을 내어 드리는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화가 나는 것사실이다.

부디, 나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더는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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