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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21. 2021

부정승차자와 역무원

그걸 아는 사람과 그걸 몰랐다는 사람

“기차 타도 검표 안 하던데?”

사람들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네. 그건 당신이 표를 끊고 표 끊은 자리에 앉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매되어 있지 않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을 경우, 당신은 검표하는 승무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승무원은 질문할 것이다.

“승차권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급해서 표 없이 일단 탔는데 기차에서 표 끊으면 안 되나요? 여기 자리 비어있으니 이 자리로 끊으면 되겠네요.”      


아마도 승무원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이 좌석은 잠시 후 도착하는 OO역부터 예매가 되어 있는 좌석입니다. 현재 이 열차에서 예매 가능한 좌석은 없습니다. 입석으로 결제하셔야 하고, 차내에서 승차권을 구입하면 일반 승차권 요금과 더불어 부가 요금이 X배 붙습니다. 부가 요금을 포함한 입석 승차권의 가격은 X원입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진짜 억울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와~ 저 승무원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아니 내가 미리 표를 사야 하는 줄 몰라가지고, 기차 안에서 표 값을 내겠다는데! 어? 표 값을 안 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겠다는데! 나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X배 요금을 내라는 거야?
그것도 좌석도 아닌 입석 승차권을!
철도청 완전 사기 집단 아닙니까? 국민을 어떻게 알고 이러는 거야?”

승무원에게 인계받은 고객은 이렇게 말한다.      


역무원이 승무원에게 고객을 인계받는 경우 중 한 가지 경우가 바로 ‘승차권 요금 결제를 거부하는 부정승차자’들이 있을 때다. 승무원이 준 인수인계서를 보고 역무원은 부정승차 사유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승차 고객들은 역무원에게 승무원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승무원은 서비스직인데 고객에게 불친절하게 응대했다. 나를 도둑놈 취급했다. 나는 그래서 요금을 못 내겠다. 이 승무원 이름 내가 적었다. 민원을 제기하겠다.’

이미 고객에게 시달릴 만큼 시달린 승무원의 얼굴이 빨간 홍당무처럼 상기되어 있다.     


“난 X배 요금을 낸다는 거 도저히 이해 못 하겠으니까 돈 안 내요. 원래 요금을 결제하게 해 주든! 요금을 안 받든! 알아서 하세요!”

역무실로 고객을 모셔오면 고객들은 말한다. 매번 다른 고객을 만나지만, 역무원은 이 이야기를 이미 백 번도 똑같이 더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난 몰랐다니까? 기차 타기 전에 미리 승차권 사야 된다고 어디다 써 붙여놨어? 써 붙여놔야 알지! 알아야 그렇게 할 거 아니야!”

철도의 경우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는 약관의 내용을 따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여객운송업에서 약관의 내용을 설명하고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면 기차를 타려는 고객에게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고 나서 승차를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불편을 고려하여 여객운송업은 약관을 설명하는 의무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운송사업자는 여객운송약관의 주요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개정사항이 있을 경우 그 사항 역시 공지하고 있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서는 융통성을 가지고 운임을 징수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당한 승차권을 구입하여 열차를 이용하는 선의의 고객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융통성보다 일관성이다. 정당한 승차권을 미리 구입하고 열차를 이용하는 여객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일이 먼저다.




"표를 미리 끊어야 되는지 몰랐다니까!"

이런 식의 말들에 지쳐있던 어느 날이었다. 기차역으로 승무원의 연락이 왔다. 열차 운임을 내는 것을 거부하는 부정승차자가 있다고 했다.

승무원과 부정승차자가 하차할 예정인 열차 시간에 맞춰 승강장으로 갔다. 승무원과 고객이 하차할 예정인 호차의 문 앞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터벅터벅 걷기 싫은 걸음을 옮기며 약속된 호차로 거의 다 가고 있을 무렵, KTX의 문이 열리고 수많은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남자 승객들이 그 ‘무언가’로 달려들어 무언가를 제압했다. 제압당한 그 무언가는 어떤 남자였다. 승무원은 어깨가 아픈지 자신의 어깨를 만지며 내게 다가왔다.      

“저 사람이에요! 지금 저 사람이 제 어깨를 밀치더니 도망갔어요!”

승무원은 내게 말했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부정승차자는 승무원을 뿌리치고 냅다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승무원은 소리쳤다.     

“저 사람 잡아!!!!!!!!!”

KTX에서 내리던 건장한 남자 승객들이, '저 사람 잡아주세요'라는 승무원의 말을 듣고 도망가는 남자를 제압했다. 그 도망자는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리를 삐끗한 모양인지 잘 일어나지 못했다. 휠체어를 가져와 그를 휠체어에 태웠다. 부정승차자를 검거한 다른 승객들이 물었다.     

“이 사람 뭐 한 거예요?”

“열차 운임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철도 사원증을 가지고 있었다. 사원증에 있는 이름이 본인이시냐고 물었다. 아니었다. 물론 그 역시 나와 같은 회사에 몸 담긴 했었다고 하는데, 이직했다고 한다. 이직을 했으니 사원증은 당연히 반납했을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사원증을 빌려 부정승차를 하는 것에 사했다. 최근 사원증도 아니고 오래된 디자인의 사원증이었다.


‘알 만한 사람이!.......나는 생각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차라리 몰랐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낫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의적인 부정승차의 증거로 ‘부끄러운 사원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나의 사원증을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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