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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pr 28. 2021

책-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정말이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어머니에게 장난스러운 표정 지었다. 가족의 슬픔 앞에서는 방적으로 불행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딸의 불행은 일방통행이 아니기에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어느 날 의사로부터 ‘보호자도 같이 들어와야 한다.’는 야기를 듣는다면, 그 이야기는 필연 불행 소식일 것이다. 어머니의 암 검진 결과를 받는 날, 어머니는 나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 처음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젊디 젊은 나의 어머니가 암에 걸린 것을 동정했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도 어머니도 안타깝지 않았다. 그 불행은 매우 빨리 발견된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발견한 덕분에 빠르게 치료했. 그 작은 불행은 사실 축복이 아니었을까? 작은 죽음을 예고해주고 더욱 큰 삶을 선물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절대적인 상실의 아픔 앞에 설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을 받아들였듯 죽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살기 위한 고통

인생도 길게 보아야 하듯, 암 치료도 길게 보아야 한다. 하지만 항암치료에 대한 당장의 두려움을 피하려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삶이 힘들 때 나는 살아있음을 원망하곤 했다. 죽음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삶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본능 역시 고통스러운 생존을 향해 있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삶을 원한다. 지금 삶이 힘들다면 죽지는 않았다는 걸 거다. 죽는 날까지 내가 선택한 고통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선택한 고통이, 살고자 하는 고통인 것일까. 당장의 두려움 앞에 고통의 적기(期)를 미룬 대가 건 아닐까.


삶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

의미 없는 항암치료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암 환자들이 삶을 정리하는 시간은 평균 6개월인 반면, 우리나라의 암 환자들은 평균 사망 30일 전까지 항암 치료에 매달린다. 저자는 ‘예정된 죽음이 어쩌면 삶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정된 죽음 앞에서까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많은 환자들이 의식을 잃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 것이다.


나에게 삶을 정리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나 역시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헛된 최선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다. 의사의 선고를 듣는 순간 삶을 정리하는 일은 이미 늦은 일이기에 어렵다. 물건이 쌓이는 방을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것처럼 나의 삶도 죽음을 위한 주기적인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는 언제나 지금, 오늘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냉정과 희망 사이

진정한 희망은 냉정 현실을 직시하는데서 온. 암 이기는 자가 승자이고, 이기지 못하는 자가 패자가 되는 승부의 문제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승리에 환호하지만 지지 않음에는 환호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자와 남겨지는 자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승리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것에 큰 슬픔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지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삶을 이야기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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