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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y 21. 2021

일상의 신호를 통해 경제 읽기

책 <시그널>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자주 빗나간다. 국가의 예측 역시 신뢰할 수 없다. 국가를 움직이는 세력의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이 스스로 경제변화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일상에 편재되어 있는 경제변화의 신호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에 편재되어 있는 신호들이란 매우 다양하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만한 부분도 경제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패션이 될 수도, 트레이더들의 '말'보다 '매도 주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상에 있는 수많은 것들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보는 많지만 쓸만한 정보를 가려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산된 위험 감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의 가격이 옳은 것'에는 위험 감수가 필요 없다. 가격이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리고 이익을 원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제를 방어하는 것, 즉 혁신하지 않는 것은 내일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생에서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말한다. '혁신하지 않고 운에 맡기는 삶을 산다면, 운의 결과도 감내해야 한다.',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경각심을 줄 만한 메시지였다.


특히 시사점을 주는 부분은 양적 완화에 대한 지적이었다. 저자는 경제 위기와 경제 하강이 발생할 때 무한대로 자본을 수혈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짜 자본으로는 성장이 창출되지 않는데도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것이 오늘날 국가들의 모습이다. 그것이 국가의 단기적인 부채 상쇄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 이론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과학자는 측정 가능한 것만 측정할 수 있지만, 실제 경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의 동력'을 경제학은 읽을 수 없다.


정상 골키퍼들의 페널티킥 사례도 매우 재미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페널티킥에 골키퍼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몸을 날리는 경우 94%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을 막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골키퍼가 가운데를 지키고 있을 때라고 한다. 하지만 골키퍼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공을 놓친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수학적인 계산으로 움직이지 않는 비합리적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그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 역시 수학적인 원리만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재미있는 건 정책 입안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에도, 그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기 위해 성급히 한쪽으로 뛰어든다. 이를 지지하는 것이 국민이고, 국가는 때론 그렇게 비합리적인 결정으로 움직인다. 국가의 경제 정책이 답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시장의 원리도 답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시장의 원리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시장이니까.


미처 몰랐던 새로운 경제학 개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좋았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둘 중 하나로 경제가 흐르지 않는 바이플레이션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데이터가 일반 대중이 체감하는 물가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면서 꼭 필요한 물건들은 가격이 오르고, 필수품이 아닌 것들의 가격은 떨어지는 바이플레이션도 존재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대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의도된 인플레이션의 위협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투자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굴복해 그 신뢰성을 허비해서는 안된다'는 볼커의 말을 인용했다. 인플레이션은 조절을 통해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다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플레이션을 '공짜 약'이자 '우유를 엎지르는 문제' 비유다.


우리가 기억하는 잠시 잠깐의 세계적 경제 호황기-(저자는 이를 완벽한 원에 비유한다)-는 끝났다. 우려로 가득한 책 속의 시그널을 읽으며 현명한 개인은 위기 속 기회를 찾을지도 모른다. 반면 시그널을 읽으려 하지 않는 개인은 운명이 휘두르는 대로 휩쓸려 갈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은 가격이 점점 오르지만 나의 월급은 이에 비례해서 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고령화된 국가는 나에게 점점 많은 세금을 가져가지만 나의 노후의 삶의 질은 보장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나에게 저자가 준 그나마 긍정적인 시그널은 위험에 몸을 내거는 것, 혁신이다.


"또 실수하지 않으면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p.391

(실수밖에 하는 게 없을지라도) 결국 개인이 변화의 주체로 나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 불황에 어쩔 수 없이) 생활수준을 낮추더라도 경험 소비를 통해 자기 재창조를 하는 것이 혁신의 길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자기 재창조 행동 역시 혁신이다."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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