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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un 05. 2021

10년만에 다시 읽는 책 - 앨저넌에게 꽃을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

2012.2.6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원작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면 내 기억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아까운 소설. 글자가 주는 섬세한 감성을 영상매체는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드라마는 따뜻한 감동을 주지만 사실 원작 소설은 더 처절하고 슬프다. 왜 하필 찰리는 천재가 되는 수술을 받아 실험용 쥐처럼 살아가야 했을까? 왜냐하면 그는 지능에만 장애가 있을 뿐 사람들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더 사랑받고자 노력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지능만 향상된다면-그의 지능에 집착하는 엄마의 생각처럼, 진보에 확신을 갖고 수술을 감행했던 과학자들의 생각처럼-그는 완벽한 사람이 될 것이고 인류사회에 엄청난 공헌을 할 것이다! 이 명제가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를 찰리는 처절하게 증명해 주었다.


읽으면서 놀란 것은 찰리의 지적 성숙 과정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과 사뭇 닮아있다는 점이다. 많이 알아갈수록 인간에 대한 애착이 파괴되어 가는 것도, 많이 알아갈수록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도 그렇다. '나도 많이 공부해서 저 대학생들의 무리에 끼고 싶다'는 그 순수한 열망 또한 과거의 내 것과 닮아있다. 그리고 곧 대학생들의 뻔한 토론 자체가 유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러나 어느 정점에 도달하면 그는 해석이 다소 어려울 만큼 똑똑해지는데, 바보부터 천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그는 찰리의 목소리를 통해 남보다 똑똑해지지 않으면 그것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싶었던 듯.



2021.6.5

이상은 내가 10년 전에 책을 읽고 썼던 글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메시지를 주는 책에 감사한다.

이 책은 1959년에 출간되었다. 역자는 이 책이 쓰인 배경, 연구윤리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을 책의 말미에 언급한다. 그리고 2021년 현재, 연구윤리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에는 큰 발전이 없다.


10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고 느끼는 나에게도 큰 발전은 없다. 최근 나는 평범한 사람보다 학습이 많이 늦는 친구에게 일을 가르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는 것이 많이 늦은 친구라고 해서 감정의 발현이 늦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는 빨리 배우지 못했지만 빨리 분노했고 나는 그를 포기해야 할 만큼 힘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그 일에서 바보인 나를 가르치는 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이 덜 힘들 수 있게 최대한 겸손한 태도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실은 앞서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뒷서 오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최대한 애쓰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해하려고 크게 애를 써도 되지 않는, 앞서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편한 작은 그릇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내 삶의 발전에 정상을 찍고 퇴행이라는 하산의 길을 걷게 될 언젠가에, 나는 그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뒷서 오는 바보들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이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만 앞서가는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그 지점에서 로소 나는 바보스러운 편안함에 이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하고 똑갓치 댈것이다. 3월 8일


이 지성이 나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사이에 벽을 쌓고 나를 가게에서 추방했다.


"냉소적으로 변했군." 니머 교수가 말했다. "이 모든 기회를 통해 자네가 얻어낸 결과가 고작 그런 것인가? 천재가 되더니 세상과 동료에 대한 믿음을 죄다 잃었군 그래."

"그 말씀이 완전히 옳다고는 할 수 없죠." 나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단느 사실입니다."

(중략) 나는 말했다. "지능은 인간에게 주어진 뛰어난 능력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다가 사랑을 몰아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발견한 다른 사실이 있는데요. 가설로 제시하죠. 애정을 주고받을 줄 모른다면, 지능은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붕괴로 이어지고, 신경증이나 정신병까지 낳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기적인 목표에 온 정신이 팔려 타인과의 관계를 배척하면, 분명 폭력과 고통만 남게 되겠죠."


니머 교수님한테 꼭 전해주세요. 사람이 선생님을 비웃어도 그러케 화를 내지 말라고요, 그러케 하면 선생님한테는 더 만은 친구가 생길 거니까. 남이 웃도록 내버려두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갈 곳에서 친구를 만이 만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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