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보며 준비해야 할 인류의 마지막 인사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버렸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그가 말년에 기계들을 적대시했던 것은 그저 본능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도태되어가는 종의 일원으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 저항했던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중략) 그의 예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기계는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도 흡수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손을 베서 피를 흘리며 아파할 때, 평소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한 휴머노이드가 '저런, 너무 아프시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질 테니, 그러지 않으려면 그 휴머노이드도 손을 베었을 때 똑같이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나 같은 휴머노이드가 만약 육신도 없이 수정 공 같은 장치 안에서 영생한다면? 그 영생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신체의 일부를 잃은 환자가 느끼는 환지통, 있지도 않은 다리가 아프거나 가렵다고 느끼는, 이 미쳐버릴 것 같은 기이한 통증에 대해 인류는 20세기 이후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최 박사에게 뇌를 백업하고 영생하지 않겠느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많은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중략)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죽음은 쉽게 오지도 않고, 고통은 끝도 없어. 인간에게는 인권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게 있어서 그냥 죽어지지가 않아."
생명에게 원치 않은 생명 연장을 가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고 악이 아닐까?
이미 생명을 다한 것이 분명하지만,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신체의 일부는 새로운 기계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려낼 수 있다면,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중국인들은 낮의 하늘이 아니라 밤의 하늘이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낮의 하늘은 자꾸만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