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은 수국처럼 하얗게 피어오른다.
책-머지 않아 이별입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가장 친한 친구가 얼마전 아버지를 떠나보냈기 때문이었다.
위독하셨다가 의식을 찾으셨다는 연락을 받은지 얼마 안 된 새벽 시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슬픔을 처음으로 전해듣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울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친구가 울음을 삼키며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넋을 놓고 울었다.
그녀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진한 슬픔은 5시간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는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영혼과 교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작별하는 이들, 세상에 남은 이들 모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은 살아있는 이에게도 떠나는 이에게도 후회가 없는 이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별은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손가락 사이를 쓰윽 빠져나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별이 주는 슬픔의 빛깔은, 토양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수국처럼 조금씩 다르게 피어오른다. 때로는 변심이라던지 변덕이라던지하는 꽃말을 가진 수국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사랑하는 딸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소설 속 아버지의 슬픔의 빛깔이 그러하듯이.
때로는 한결같은 사랑, 인내심 강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피어오를수도 있다. 죽음 앞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반지의 주인들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슬픔이겠지만, 그 커다란 슬픔을 이겨내는 것도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소설의 풍경들이 말해주고 있다.
"저 인형에는 상주님의 바람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부인이 다시는 깊은 슬픔에 잠기지 말라고,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따님을 가슴에 품고 서로 위로하면서 함께 살아가자는 의지가. 히나 양은 브루가 되어 앞으로도 계속 두 분과 함께 있을 겁니다."
또한 우리가 쉽게 자각할 수 없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음에도 이입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손을 놓친 건 나였다'고 말하는 시미즈의 언니의 영혼이 참 슬펐다.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 뿐이 아니다. 떠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소설 속 제목처럼 <머지 않아 이별입니다>를 되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는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직감한 순간 후회없이 모든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로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잘 키울께요. 걱정 마세요.'
누구보다 깊은 슬픔에 잠긴 그녀가 누구보다 앞을 향한 한 걸음을 잘 내디딜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