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를 하던 어느 날, 이유 없이 온몸이 뻐근하고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다가 우연히 가슴에 작고 붉은 점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두드러기 같아서 그냥 넘기려다가, 통증이 느껴지는 게 이상해서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더니 대상포진 같다며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아침 9시,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자마자 내과에 갔다. 수포가 몸의 한쪽 부위(오른쪽 가슴, 오른쪽 등)에 모여 있는 점, 한쪽 몸통에 일자로 퍼진 흔적이 있는 점 등을 토대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골든타임(3일)안에 항바이러스제를 먹을 수 있어서 큰 후유증은 남지 않았다. 항바이러스제를 일주일은 반드시 먹어야 하고, ‘푹 쉬어야 한다’는 게 진짜 처방이었다.
#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한 갑상샘 저하증
건강검진 선택 항목을 고를 때 자주 선택하는 부분이 ‘갑상선’관련 피검사다. 작년부터 추적관찰을 요한다는 소견을 받았고, 올해는 갑상선자극홀몬(TSH) 수치가 종전에 비해 더 높아져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사실 잦은 피검사에 지쳐서, 건강검진기관에서 받은 피검사 결과를 가지고 병원에 가서 전문의와 상담하면 되는지 문의했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받은 검사는 ‘갑상선기능검사’는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작년에도 동네 병원에서 갑상선기능검사를 했는데 ‘갑상선항진증과 갑상선저하증을 나타내는 수치가 동시에 올라가있다, 항체가 있다’며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 검사를 받을 때 6만원의 검사비가 들고, 혈관이 얇아 힘들게 채혈을 해야해서 미루다 결국 1년이 지난 근래에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근처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6만원의 검사비를 내고 다시 채혈을 한 결과, 갑상샘 저하증 진단을 받고 2개월간 호르몬 치료제인 씬지록신을 처방받아 복용하게 되었다.
“일년이나 약을 먹어야 한다고요?”
병원에서 처방받은 씬지록신정50mcg
놀란 나는 선생님께 되물었다. 2개월 뒤 다시 검사를 할 예정이라 결과에 따라 처방이 바뀔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갑상선호르몬제는 1년 이상 먹는다고 한다. 나의 갑상샘 저하증은 갑상샘 저하증의 주된 원인인 하시모토 갑상선염이라는 자가면역질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갑상선 저하 문제가 아니고, 평생 관리가 필요한 게 당연했다.
약은 공복 시간이 확보된 아침에 먹고, 흡수될 때까지 1시간 정도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규칙 하에 매일 복용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약도 규칙적으로 먹어야 효과를 내는데 나의 삶은 규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의 삶은 '규칙적으로 먹지 않고 규칙적으로 자지 않은 채' 꽤 오랜 기간을 굴러왔다.
# 워라밸 최고라는 교대근무, 근데 우리는 언제 만나?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대근무 그거 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대근무의 최고 장점은, 초과근무가 거의 발생할 수 없기에 소위 '워라벨'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정해진 시간만 어떻게든 버티면 다른 조의 교대 근무자가 나와 바톤 터치를 해준다. 또, 평일에 쉬는 날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여행을 다니기 좋다. 갑작스런 야근이나 갑작스런 초과근무 등 일정 변동의 우려가 없어 여행 등의 계획을 미리 세우기 좋다.단, ‘나 혼자 한다’는 전제하에서는 그렇다.가끔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일할 때 사람들은 다 자고 있고, 내가 자고 있을 때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일을 한다.
# 교대 근무 경험자가 말하는 교대 근무란
3조 2교대 달력
내가 근무한 교대 근무는 3조 2교대 근무와 4조 2교대 근무이다. 교대 근무도 회사마다 다르고, 조가 몇 개인지에 따라, 몇 교대인지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같은 직장 사람이 아니면,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가 어떤 근무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내가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보통은 핸드폰으로 교대 달력을 캡처해서 보내주며 ‘빨간 날은 쉰다고 생각하면 돼’, 라고 이야기하고 사전에 모임 약속을 잡는다.
3조 2교대의 주간 근무 시간은 09:00~19:00, 야간 근무 시간은 19:00~익일 09:00이다.
비번일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고 쉬는 날을 의미하며(09:00~퇴근), 휴무일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쉬는 날을 의미한다.
교대 근무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야간’근무와 ‘비번’이 있다는 것이다. 저녁에 출근해서 열차 종료 시간까지 근무하고, 역 숙직방에서 소정의 취침시간(3시간)을 취침한 후 첫차가 다니기 전 역사를 열고 근무를 시작한다. 익일 새벽부터 근무를 시작하며, 그날 9시에 출근하는 주간 근무자가 업무 교대를 할 때까지 야간 근무가 계속된다. 아침 9시에 주간 근무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퇴근하면, ‘야간’근무는 끝이 나고 ‘비번’일이 시작된다. 야간 근무가 이틀 연속 발생하는 3조 2교대의 경우, 첫 번째 야간 근무를 하고 익일 아침에 퇴근하면, 익일 저녁에 두 번째 야간 근무를 하러 다시 출근을 해야 한다.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한 뒤 그날 저녁에 다시 출근을 하게 된다.
# 교대 근무와 건강
교대 근무를 통해 느낀 건강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첫째, 잠은 진짜(진짜!) 보약이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야간 근무일은 몸이 아프다. 야간 근무 중 절대적인 취침 시간이 적게 주어지는 탓도 있지만, 교대 근무로 인해 수면 패턴이 깨져 취침 시간에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뜬눈으로 밤을 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이 야간 근무날인 경우 진짜 힘들다. 야간 근무날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새벽에 힘을 내서 다시 일을 하는데, 잠을 전혀 자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경우 두통이 오기도하고, 심장이 따끔따끔 아플 때도 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면 비몽 사몽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잠을 자게 된다. 그 때 진짜 잠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둘째, 해 뜰 때 움직이고 해질 때 잠드는 것이 보약이다.비타민D 합성은 비타민으로 보충한다고 하더라도, 햇볕을 보지 못해 나도 모르는 사이 다운되는 기분은 보충하기 어렵다. 아침에 퇴근하고 잠을 자고 일어나 주린 배를 채우고 나면 해지는 저녁 무렵이 다가온다. 활기찬 활동이 가능한 낮 시간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밤에는 다시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밤에 할 수 있는 활동 역시 제한적이다.
셋째, 면역력에 손해다. 무조건 교대 근무 때문에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아픈 이유는 노화가 시작되는 30대가 되었고, 가족력과 같은 유전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대 근무로 인해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 열심히 관리하게 되는 건강의 역설(?)도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면서 콜레스테롤과 같은 여러 건강 관련 수치들이 잘 관리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험상 면역 관련된 부분은 꾸준한 관리로도 잘 조절이 되지 않는 것 같다.
# 알게 되어 다행이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게 되었다는 나에게 친구들은 ‘그래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약을 먹으면 괜찮다니 다행이다’라고 했다. 교대 근무의 단점 역시, 잘 알게 되었으니 잘 관리하면 될 것이라 믿기로 했다. 1년 사이에 왜 살이 10kg 가까이 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더욱 강한 운동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이다. 멈출 줄 모르는 내가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쉴 수 있는 계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어쨌든 지금은 교대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지금 가진 워라밸을 활용해 최대한 건강하고 최대한 행복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