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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Dec 02. 2023

인복 없는 나에게, 다이아처럼 참으라고 책은 말한다.

책 <사람을 얻는 지혜>

인생 대부분의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정말이다. 특히, 회사에서 나의 인복은 로또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나 꽝이었기 때문이다. 장편 소설은 거뜬히 나올 만큼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났는데 소설로 쓰지도 못한다. 브런치에 올렸다가 다음 직장in 조회수 1위를 오랫동안 차지한 바람에 회사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게 됐고, 나의 대나무숲은 그렇게 막을 내려야 했다. 아직 진짜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그 정도로 나에게는 기나긴 박복의 역사가 존재한다.


나의 역사를 아는 주변인들은 말한다. 요즘 엠제트 신입사원이었으면 벌써 에어팟 끼고 ”제가 왜 밥솥에 밥을 해서 같이 점심을 차려먹어야 하죠? 저는 밥 혼자 나가서 사 먹겠습니다. “라고 했을 것이라고 한다. 제가 왜 해야 하죠?라고 묻고 싶은 것이 어디 점심준비뿐이랴. 엑셀도 볼 줄 모르고, 인터넷 결제도 할 줄 모른다는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당연히 나의 일이 되어버린 것들은 어쩌랴. 단톡방에서 큰 마음먹고 꺼낸 이야기. ‘돌아가면서 하는 건 어떨까요?‘는 읽씹 당했다. ”물러 터지게 생겼잖아 “라고 갑자기 대화 흐름에 전혀 없던 내 얼평을 시전하던 팀장은 나의 곁에서 퇴직까지 쭈욱 함께하고 싶단다.


사실 내가 물러터진 탓만으로 물어뜯기며 사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나이가 많지만 않았어도 나도 벌써 한 판 했을 것이다. 퇴직 앞둔 팀장은 자기가 사람을 다룰 줄 알아서 직원들이 말을 잘 듣는다며 거들먹댄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경로 우대 아닐까요?”

조금 돌려서 말했더니 팀장은 돌려 까기인 줄도 모르고 까르르 웃는다. 본인이 싸 온 반찬을 다들 먹기 꺼려하는 것도, 자식들이 밖에서만 밥을 먹는 이유도 잘 모르는 듯하다. 직원들이 반찬 투정을 한다고, 자식들이 나가서 밥 먹는 걸 좋아한다고 불평하기 때문이다. 권위가 생기면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반찬 맨날 똑같고 맛이 없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경로 우대, 권위 우대 때문.


‘금이 간 그릇은 좀처럼 깨지지도 않고 짜증이 날 정도로 오래간다’는 책 내용에 엄청나게 공감했음은 물론이다. 무익한 사람들이 장수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단명한다는 책의 내용을 직장생활에 빗대면, ’능력 없는 사람들이 오래 근속하고, 탁월한 사람들은 도망간다’이다. ‘오래 살려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돼라.’ 평소 이 회사에서 오래 근속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말이었다. 서글프게도 역시 근속을 할수록 탁월함은 줄고 무용함만 늘어간다. 내가 혐오하는 무용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아간다.


”왜 그걸 참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안 참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딜 가나 그런 것들 뿐인데 평생 싸움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우리 회사 최고 빌런이 자주 쓰는 말이 그거라고. ’나는 이 구역의 미친년이야. 나는 안 참아.‘ 부당한 것과 투쟁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치고 빌런 아닌 사람이 없었다고.


칼날이 있는 부분만 쥐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책 속 비유를 인용하고 싶다. 칼날을 잡고 인복이 없다고 슬퍼하던 나에게 책은 말한다. 칼자루 쪽을 잡고 자신을 보호하라고. 괴물과 다이아는 딱 한끝 차이에 놓여 있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선택이라고.


이기적인 괴물이 되는 건 쉬운 선택. 호구 취급에 굴하지 않는 다이아가 되는 일은, 이 책을 읽고 내용을 곱씹고 스스로 다짐해야만 하는 어려운 선택. 그러다 단명할 것 같지만, 무용하게 오래 살기로 단세포적인 마음 먹기엔 책을 읽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새해 다짐처럼 결심한다. 물러터진 것이 아니라, 나는 다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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