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비투스를 만나러 갑니다.
책 <아비투스>
#높은 아비투스만을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평소 생각하던 올바른 관계망에 대해 언급해 준 책이 <아비투스>이다. 어떤 관계 안에서 성장했는지가 그 사람의 아비투스를 결정하며,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사람은 기존에 지니고 있는 아비투스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책은 강조하고 있다.
#팬(fan)도 많고, 안티도 많은 인문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논리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계층을 나누고 반드시 높은 아비투스를 지향해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된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글을 쓴 저자가 불편한 현실을 반영해 개념적 편의상 급을 나눈 것이지, 전적으로 자신보다 높은 아비투스만을 바라보라는 의도로 글을 쓴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오로지 저 멀리 위만 보고 저 멀리 아래는 보지 않는다. 더 풍족한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자칫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다.’는 책의 내용처럼 말이다. 자신의 아비투스가 무엇인지 고찰하고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책이다.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자본들 중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회자본
자신의 아비투스를 아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회자본’이다. 때로는 친근한 인맥에서 벗어나 느슨한 연대로부터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집단에서는 너무 애쓰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 아니라 자신답게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좋다.
자신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활기찬 아우라로 가꿀 수 있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아도, 우월한 집단의 아비투스를 체득할 수 있는 성장 배경이 아니었을지라도, 후천적으로 우수한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내장된 프로그램인 ‘출신’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것이 지금 시대이기 때문이다.
책의 제안처럼 나의 사회자본을 꾸준히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절해야 할 사람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좋은 아비투스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자 한다. 이번 독서모임이 나에게 좋은 아비투스를 전염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을 주변에서 보지는 못했다. 스스로의 그릇을 크게 하는 것도 노력으로는 어려웠다. 결국은 내가 가진 그릇 안에서 놀게 되더라.
나는 그릇이 여러 개인 사람이 좋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고 다양한 아비투스를 접하기 위해 노력한다.'
말을 하면서 알게 된 나의 마음은 이랬다.
사람들의 그릇에 실망하고,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나의 그릇에도 실망했지만
다시 또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또 독서모임에 간다. 세상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고, 나는 여러 개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