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김영하-여행의 이유를 읽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했던가. 나는 지금 여행을 생각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떠나야만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있다. 떠나야만 일상을, 생을 사랑하게 된다. 세상을 떠날 때가 돼야 생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이란 관성을 깨는 그 무엇
최근 읽은 여행 관련 에세이 중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어쩜 그리 찰떡같이 똑같은지,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마냥 여행을 예찬하는 이야기만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작가님은 '실패한 여행’을 통해 느낀 여행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책을 시작한다. 실패한 여행도 여행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좋았다. 우리는 흔히 어떤 장소를 다녀왔다는 것을 여행의 기준으로 삼곤 한다. 하지만 그 장소를 다녀온 것만 여행이 아니다. 목표한 여행지에 가지 못했던 여정도 여행이다.
여행지가 꼭 대단한 어딘가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소파 위에서 영상으로 보는 간접 여행조차도 강렬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작가님의 생각에 동의한다. 많은 장소에 도장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관성을 깰 수 있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 가는 여행지의 경우 혼여(혼자 여행)를 선호하는 편이다. 처음 가는 곳에서 마음껏 헤맬 수 있는 자유가 좋다. 심심하지 않냐는 주변의 말들이 사실 이해가 안 된다. 홀로 여행 중에도 나는 바쁘다.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가지고 가서 읽기도 하고, 여행지와 관련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여행지 유튜브를 보며 정보를 얻기도 하고 공감을 얻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최대한의 지식과 체험으로 스스로를 채우다 보면 그 여행은 한껏 충만한 기억으로 남는다.
충만하기 싫을 때는? 실컷 쉰다. 그러면 다시 채울 공간이 생긴다. 배터리가 방전돼도 혼여라면, 빨리 채울 수 있는 유연한 일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래서인지 혼여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란 참 어렵다. 물론 단점도 있다. 맛있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시켜서 먹을 수 없다는 것. 치안이 좋지 않은 장소는 방문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치안 좋은 곳으로만 여행 다녀도 모자란 짧은 인생이다. 맛있는 음식은 여행지가 아닌 곳에도 많이 있어서 아쉽지 않다. 혼밥이나 사이드 메뉴가 잘 되어 있는 곳에서는 소량씩 다양한 음식을 주문해 맛볼 수도 있다.
내 최고의 여행은 역설적이게도 '일상 여행’이다. 여행 같은 일상을 살 때가 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운, 더할 나위 없는 나날들을 일상에서 보내고 있다면 나는 이미 여행 중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행도 잠시, 일상의 무게는 나를 다시 짓누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여행을 꿈꾼다. 일상이 힘든 당신, 일상과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여행을 한 번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그럼에도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유죄다.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영감을 쫓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생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정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