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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도 급수가 있었으면

독서모임 방랑기

by 낮잠

독서에도 운동처럼 급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임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임에는 친목이 생기고 친목이 생기면 놀러만 오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게 마련이다.

보통은 그런 사람이 있어도 나랑 큰 상관이 없지만 모임의 발제를 맡은 경우는 달랐다. 책을 읽었으면 알 수 있는 개념에 대해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책을 읽으시지 그랬어요. 이렇게 대답을 못하는 나는 바보같이 또 그것에 대해 설명이라는 걸 했다. 씁쓸했다. 나는 국어 교사로 이 자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같은 모임원으로서 토론의 주제 선정과 진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자기가 ‘책을 전혀 읽고 오지 않아서 물어보는 것이다’라고 숨김없이 말했다. 심지어 그는 발제문에 인용된 책의 문장만 봐도 작가가 깊은 생각 없이 글을 썼다는 걸 알겠다며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모를수록 용감하다는 말이 이 상황을 두고 나온 말인가 싶었다.


토론이 끝나고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은 발제자가 발제문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는 발제문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고생한 것이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좋아하는 책으로 발제를 해서 발제 준비하는 건 너무 즐거웠어요,라는 나의 답에 그들은 말했다.

“그럼 계속 발제 좀 해주실래요? 낄낄.”

나를 부려먹던 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과 비슷했다. 그럼 네가 계속 그 일 좀 맡아줄래?


토론에서는 말이 없던 사람들의 입에 치맥이 들어가니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분과 둘이 조용히 사담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그것이 소개팅 장면 같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어서 ‘블라인드 소개팅’, ‘로테이션 소개팅’에 대한 열정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청춘들의 모임답게 소개팅 이야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내가 그 플랫폼에서 독립출판 모임을 했다고 한 마디 얹으면 사람들은 대꾸할 수 없었다. 그들은 화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로테이션 소개팅에 같이 가서 서로 한 표씩 찍어주자는 농담이었다. 어떤 사람은 ‘허들이 낮은 소개팅은 나오는 사람의 수준이 별로일 것 같아서 싫다‘는 말을 했다. 나는 인연이 되려면 어디서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래도 허들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론할 때 자기주장이 없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라 신기했다.


나는 책읽는 모임에도 허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배우고 있는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에는 급수가 있다. A, B, C, D조로 급이 나뉘어 있기에 더 성장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나의 운동실력은 초보자들끼리 휘휘 치는 약수터 배드민턴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급수가 있는 사람들을 보며 배드민턴에 입문했기 때문에 기초를 더 제대로 배우게 되었고, 건강한 자세로 오래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모임 역시 급수가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리를 옮기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없이 그저 관성대로 계속 시간과 노력과 돈을 썼다. 소개팅 이야기가 가장 좋은 청춘인 그들은 잘못이 없었고 나는 그들보다 나이가 들어 있었다.

조금 더 난이도 있는 곳을 탐색하고 도전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좋은 독서모임 고르는 법에 대해 글을 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나는 방랑자였다. 참여자에 따라 복불복이 심한 모임보다 검증된 강의, 배움터를 찾아야 만족도가 높아질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내공의 40대를 맞이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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