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당신께 부끄러운 고백 같은 걸 했었지. 그간 연락이 잘 되지 않던 평일 오전에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던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차마 파트타임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부끄러워 솔직하지 못했다고. 당신과 더 자주 보고 싶고 좋은 곳에 가고 싶고, 맛난 것들을 함께 먹고 싶어서 나는 시간을 쪼개어 조금 더 바쁘게 지내왔다고. 자주 답장이 늦어서, 생활을 숨겨서 정말 미안했다고.
늘 입 밖으로 내뱉는데 실패했던 이 고백을 홀린 듯이 풀어놓고 나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고, 이내 당신의 예쁜 눈이 젖어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내는 당신을 보며 나는 그것이 동정인지 연민인지 애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어가야 할 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는 이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을 지도 몰라. 넘어야 할 산이 켜켜이 쌓인 등산길의 초입에 서 있는 걸지도 몰라. 아마도 나 혼자서 널 데리고 갈 순 없는 길이겠지. 같이 걸어야 할 텐데 쉽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다면 나랑 같이 가보는..”
당신은 급히 내 말을 가로막으며 무슨 질문이 그러냐고 울먹이며 되물었었나.
오르다 힘들면, 정말이지 지쳐 더 이상 못갈 것 같을 때, 그 때 다시 돌아가도 되지 않겠냐고. 지레 포기하는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고. 나는 차마 당신의 손을 낚아채고 자신있게 함께 가자 할 수가 없어, 구구절절 길고도 모호한 문장들만 늘어놓았다. 당신의 어떤 대답에도 부서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서.
3년 전 교토의 마지막 밤을 생각해. 그 때 우리의 선택을 넌 후회하니?
결국 우리는 어딘가 많이 부서진 채로, 먼발치의 정상을 등지고 다시 돌아서는 편을 택했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던 무모한 시절이 있었다고. 끝내 손을 잡고 정상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산 중턱에서 본 갖가지 풍경들은 정말이지 예쁜 것들로 가득했다고. 나는 우리의 산행을 그렇게 기록할 수 있는데. 넌 어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