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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Nov 17. 2019

잘 사는 것에 대한 단정들

단정을 제대로 반박하는 법

17살 때입니다. 부모님께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말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그래도 오후 이후의 시간은 나만의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서도 한참을 책상에 앉아 있어야 집에 올 수 있었고, 피곤해서 잠을 자면 다음날이 되곤 했습니다. 하루 종일 있어 본 학교는 저에게 무의미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자퇴를 이야기하는 저에게 부모님은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지.”

“남들 다 하는 거 안 하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제가 한두 마디 더 한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더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겠지?' 하며 스스로 낙담했습니다. 답답했어요. 그러나 저의 주변에는 온통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학교를 그만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수가 가고 있는 삶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잘 사는 것에 대한 조건’을 들이미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가족일 때도 있고 친구일 때도 있고,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일 때도 있지요. 제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저의 주변에는 잘 사는 기준에 대한 단정들이 넘쳐났습니다.



10대- 학교는 다녀야지다 열심히 공부해 놓아야 나중에 원하는 것이 생길 때 선택할 수 있지뭐든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야.

20대- 대학은 다녀야지. 창업 말고 취업해야지연애는 해야지결혼은 해야지남자는 집 해오고 여자는 혼수 마련해야지아직 젊으니 이 정도 급여면 괜찮지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젊음을 올인해야지.

30대- 연애는 해야지. 결혼은 해야지. 애는 낳아야지. 애는 엄마가 봐야지. 젊을 때 일에 올인해야지. 집은 있어야지.



제가 나이 때 별로 들어왔던 대표적인 ‘단정’들입니다. ‘단정’은 ‘어떤 사실에 대해서 딱 잘라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림’을 뜻합니다(출처: Daum 사전). 위 단정들은 마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사실처럼 들리지요. 모두에게 이것이 참이라고 말합니다. 


단정은 항상 참일까요?


수학에서는 참이나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문장이나 식을 ‘명제’라고 합니다. 문장 ‘~이면 ~이다.’가 참인지 밝히려면 기존에 참이라고 증명되었던 정리에서 증명을 시작해야 합니다. 거짓인 경우도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 문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예(반례라고 합니다)를 찾으면 돼요. 



'x가 4의 약수이면 x는 12의 약수이다.'가 참인지 거짓인지 살펴봅시다.

4의 약수는 1, 2, 4이고, 12의 약수는 1, 2, 3, 4, 6, 12입니다.

4의 약수는 모두 12의 약수도 되니 위 문장은 참인 명제이지요. 

거꾸로는 어떨까요? 

'x가 12의 약수이면 x는 4의 약수이다.'

이것은 거짓인 명제입니다.

3은 12의 약수이지만 4의 약수가 아닙니다.

이때 3은 반례인 것입니다.



하나라도 거짓인 경우가 나오면 그 문장은 거짓인 명제입니다. 제가 이때껏 들어온 단정들이 참인 명제인지 거짓인 명제인지 알아봅시다. 


결혼은 해야지. → 결혼해야(만) 잘 사는 것이다.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스스로 삶을 만족한다고 느끼면 잘 사는 것으로불행하다 느끼면 못 사는 것으로 보겠습니다이 문장이 거짓이라는 증명은 아래와 같은 반례를 찾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이 있다.
결혼해도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결혼해야(만) 잘 사는 것이다'는 거짓인 명제가 됩니다. 다른 단정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단정 지어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알려주세요.

 

❝당신은 제대로 된 증명 없이 모든 이들이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상대는 반박할지 모릅니다. 연애해서, 결혼해서, 애 낳아서, 집 있어서 잘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요. 세상을 모른다고 할지도? 그러나 증명의 세계는 이를 증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경우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애하는 모든 사람이, 결혼하는 모든 사람이, 애를 낳은 모든 사람이, 집이 있는 모든 사람이 잘 살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례가 하나라도 있다면,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 내용에 부합한다 해도 그 문장이 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야,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자식이 대답합니다. “결혼 안 해도 잘 사는 사람 있고, 해도 제대로 못 살아서 헤어지는 사람도 있잖아. 결혼 꼭 안 해도 돼.” 이 경우 부모님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주변 사례를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말이지요. 반면 자식의 대답은 타당합니다. 반례를 들어 명제가 거짓임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한편 자식이 “결혼 안 하고 잘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 안 하는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쉽지만 그것도 거짓인 명제입니다. “결혼해야 잘 산다.” 만큼이나 “결혼을 하지 않아야 잘 산다.”도 거짓인 명제일 뿐입니다. 반례는 수없이 많고, 내가 그 반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확신은 거짓일까요? 


수학에서 증명은 확실히 참이라고 증명된 내용에서 시작합니다. 이 ‘확실히 참이라고 증명된 내용’도 증명 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확실히 참이라고 증명된 내용’에서 시작합니다.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가 보면 결국엔 증명이 필요 없는 참인 명제가 나옵니다. 하나의 이론에서 증명 없이 당연히 맞다고 전제된 명제를 ‘공리’라고 부르는데요.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기하학에는 다음과 같은 공리가 있습니다.



<유클리드 5 공리> 

1. 동일한 것의 같은 것은 서로 같다. (A=B, A=C이면 B=C이다.)

2. 서로 같은 것에 같은 것을 각각 더하면, 그 결과는 같다. (A=B이면 A+C=B+C이다.)

3. 서로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각각 빼면, 그 결과는 같다. (A=B이면 A-C=B-C이다.)

4. 서로 일치하는 것은 서로 같다.

5.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



공리와 함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 약속한 공준도 있습니다공리처럼 무조건 맞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맞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가정하에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초 틀로 사용합니다.



<유클리드 5 공준> 

1. 두 점은 한 직선을 결정한다.

2. 선분은 직선으로 연장할 수 있다.

3. 원은 어떤 점에서 어떤 반지름을 가져도 좋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평행을 이루는 직선은 오직 하나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하나의 수학 체계라면 어떨까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참이라고 여기는 공리는 ‘인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 인권선언의 몇 가지 내용을 예로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제3조 모든 인간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5조 아무도 고문이나 가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제20조 1항 모든 인간은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 

제23조 1항 모든 인간은 일, 자유로운 직업의 선택,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 등의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공리, 공준으로부터 증명된 참인 명제들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해쳐선 안 된다." 

"일하면 정당한 돈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린 진짜 참인 명제는 오히려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참인 명제에 집중하기보다 수많은 거짓 명제로 스스로와 타인을 괴롭게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요?  내 삶의 기준이 타인에게는 거짓일 수 있고, 훗날 나에게도 거짓일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삶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Photo by  Javier Allegue Barros  on  Unsplash


❝여러 단정의 반례가 되길 꺼리지 맙시다. 또 다른 단정을 만들지 맙시다.❞ 


실제로 본인이 확신하는 단정들을 참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를 수십 개도 직접 접해보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살면 왜 안되는데? 난 이렇게 살 건데? 왜 그 방식만이 정답이지?"

흔히 말하는 '반항'을 존중합니다.

"이게 나한테는 답이 될 수도 있어. 남들이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아도 돼."

흔히 '또라이'로 불리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수학은 정확함을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학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삶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학은 하나의 정답만 있다는 말 대신, 수많은 거짓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우리에겐 앞으로의 미래를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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