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의 기억

수필 - 아동기외상/ Essay &art기고

by 김숙진

여름은 초복에서 시작해 중복을 지나 말복에 이르기 까지 무더위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고 단련시키는 듯하다. 땡볕 한복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복날이면 사람들은 삼계탕을 떠올리지만 내겐 그 풍경이 늘 낯설다.


봄이되면 학교 앞에서는 병아리를 팔곤했다. 봄볕 아래 병아리들의 등장은 하굣길 꼬맹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나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금통을 털어 병아리 두 마리를 샀다.

병아리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며 며칠 동안 통박을 주시던 엄마가 병아리 여섯 마리를 사 왔다. 내가 사온 병아리들은 자라서 흰색 닭이 되었고, 엄마가 사온 병아리들은 붉은색 닭이 되었다. 아버지는 옥상에 닭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닭 여덟 마리가 닭장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내가 산 흰 닭들이 엄마가 산 붉은 닭들과의 싸움에 밀려 걸핏하면 털이 뽑힌 채 피를 흘렸다. 아버지는 좀 더 크면 흰 닭부터 잡아먹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기겁해서 투쟁을 한 끝에 아버지로부터 내 닭들이 따로 살 닭장을 얻어냈다.

평화로움 속에 닭들은 쑥쑥 잘 자랐고, 흰 닭들은 내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그런데 붉은 닭들은 알도 잘 낳는 반면 내 닭들은 포동포동 살만 찌면서 알 하나를 못 낳았다. 엄마, 아버지는 점점 뒤뚱뒤뚱 걷는 내 닭을 호시탐탐 노렸다. 나는 부모님이 잡아잡술 낌새를 차릴 때마다 닭을 호위하기 위해 안달을 부렸다.

어느 날이었다. 친구집에서 방학숙제하고 놀다가 뭔가 기분이 이상해 급하게 집에 돌아와 보니 역한 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들어서는 나를 보자 아버지는 닭다리를 뜯으시면서 “어서 들어와라. 닭고기가 연하고 맛있다” 하시며 먹어보라 하셨다. 내 닭 두 마리가 중복 날 가족들의 보신이 된 것이다. 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대성통곡했다. 가족들도 질려하고, 나도 그만 울어야지 해도 '꼬식이' '꼬돌이'가 나를 얼마나 찾았을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식구들의 입술이 하나같이 번들번들 춤추던 그날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난 닭고기를 먹지 못한다. 닭 끓이는 냄새도 맡기 힘들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다니는 남매 읽으라고 과학전집을 주문했더니 사은품으로 병아리 수동 부화기가 배달되었다. 아이들은 책보다는 부화기에 더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은근슬쩍 부화기를 광속에 쳐 넣어버렸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딸아이가 "선생님이 개학하면 과학 탐구보고서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시던데" 하며 부화기 얘길 꺼냈다. 난 수동부화기를 가지고 무슨 부화가 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까지 딸을 거드는 바람에 더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전등불로 적정온도를 맞춰야 하는 수동부화기는 토성처럼 생겨서 밑에는 물을 넣고 허리선 밑에 알 두 개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채반 같은 것이 걸쳐져 있었다. 채반에 달린 막대기가 삐죽이 밖으로 나와 있어 좌우로 흔들어주면 암탉이 다리로 알을 돌려주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형태였다.

수동으로 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21일 동안 딸아이는 어미 닭처럼 유정란을 흔들어주며 정성을 다했다. 나는 신칙하고 싶은 감정을 애써 누르며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딸이 과학보고서 일지를 20일째 쓴지 스무날이 되던 날 유정란에서 삐악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새벽 2시가 되자 줄(啐)만 있고, 탁(啄)은 없는 병아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며 몸부림을 치는데 그 광경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한편 탁(啄)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어 인공 부화시킨 것이 미안했다. 털이 다 말려진 병아리들을 품에 안고 소중해 어쩔 줄 몰라하는 딸과 아들의 모습에서 30여 년 전의 나를 보았다.

'병아리 탄생과학 보고서'는 대상을 탔다. 스타가 된 병아리들은 살뜰한 보살핌 속에 잘 자라고 애들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헤어질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숙고 끝에 우리 가족은 좋은 유정란을 골라 준 농장주에게 사료와 함께 닭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은 '꼬남이' '꼬순이'가 떠났다는 사실에 손을 달달 떨며 흐느꼈다.


식문화가 변화하면서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일인일닭' 시대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 문화에 합류하지 못하고 해마다 복날이 돌아오면 버릇처럼 그날의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마음 편하게 복날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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