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따지자면 세상이라는 극에서 나의 위치는 단역이다. 어느 장소에서든, 어떤 만남에서든 나는 주변부에 자리잡고는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만든다면 앞에 ‘비주류’, ‘저예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
반면 어디를 가나 주인공인 사람들이 있다. 신기하고 재밌는 일, 엄청난 행운이나 불행이 본인이나 주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잦은 사람들이 있다.
컨테이너에 살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서 자수성가해서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로 성공을 인정받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층간 소음을 자주 항의하던 청년이 얼마 전 백혈병에 사망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탄사를 내뱉는 쪽이다.
직장을 다닐 때 정말 ‘드라마 퀸’을 본 적이 있다. 화물을 모아 수출입을 하던 회사에 근무하던 때였다. 동기 중 한 명은 모두가 한 번쯤 겪을 법한 부당한 일을 당하고 속상함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였다. 선배가 위로를 건네자 드라마 주인공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흐흑’ 소리를 내며 울었다. 모두 당황했고 괜찮다며 그녀를 둘러싸고 격려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가 부족한 탓이려니 했다. 언뜻보면 좋은 대안 같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잘못을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한 태도이다. 괜찮다고 쿨한척 한 후, 마음 한구석에는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과 함께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남았다.
사람들 앞에서 억울하다고 모든 게 나의 탓은 아니라고 외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게 징징거림이나 소위 말하는 오버(과잉반응)라고 누군가는 느끼더라도 최소한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최근 힘들고 억울한 일을 겪었다. 나를 탓하며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이대로 나만 당할 수는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물고 늘어졌다. 울고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렇게 힘들었냐며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위로를 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은 일,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괜찮다.”라고 말했을 테다.
무조건 ‘괜찮다’는 말로 덮으려 하지 않기. 때로는 드라마 퀸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람처럼 행동해보기. 거기에 따르는 찬사와 위로를 모두 받아보기.
나에게도 가끔 이런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