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화순에 왔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몇 개월 전에 산 캠핑 장비인 타프(그늘막)를 한옥 집 마당에 펼쳐 놓았다. 꽤 그럴듯해 보였다.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산 중저가의 첫 번째 타프에 이어 30만원이 넘는 제품을 사서 몇 번이나 펼쳐보았던가. 기어코 육각형 프레임의 신제품을 구입하고 석 달 만에 펼쳐 본 남편은 내심 뿌듯해 보인다.
수도권에서 물난리가 나서 TV 뉴스와 라디오에서 크고 작은 수해 소식이 전해지던 오후였다. 화순은 폭우는커녕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진 오후 그늘막 아래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던 남편이 말했다.
“아, 우중 캠핑하고 싶은데 여기는 비 올 생각이 없네?”
타닥타닥 빗소리를 들으면서 하는 캠핑의 정취를 알기에 일기 예보를 확인하며 나 역시 기대감을 보였다.
“내일은 비 소식이 좀 있다는데?”
폭우로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 사망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은 바로, 그날 오후였다. 내가 어떻게 반응했었더라. 눈물을 살짝 글썽거렸던 것도 같다. 짧은 찰나 내가 알던 지하의 공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학창 시절 줄기차게 놀러 가던 친구의 집은 반지하였다. 방에 누우면 창문을 통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와 신발이 보였다. 비가 오지 않아도 일년내내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나 역시 지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지만 원룸촌과 낡은 양옥집에 살면서 더위와 추위 같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게 산 세월도 짧지 않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서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비를 기다릴 수 있었을까. 고작 타프를 적시는 빗소리를 듣겠다고 말이다.
몇 해 전, 영화 기생충을 보며 지상의 공간보다 끝없이 추락하여 지하에 움츠려 사는 주인공 가족에게 더 공감하는 쪽이라고 자신했었다. 모든 허드렛일을 고용인에게 맡기고 못사는 사람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꺼리는 쪽보다는, 허리까지 들어찬 빗물에 살림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보는 참담함을 이해하는 쪽이라고 감히 생각했었다.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상상해 본 적도 없을 한없이 낮은 곳인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지상과 지하 사이 어딘가 애매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최소한 누군가의 아픔과 상실을 너무 쉽게 넘겨버리지 말자고, 겨우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