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by 김모씨

나는 사람을 피한다. 아니, 피하는 편이다. 아파트 승강기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까 초조하다. 멀리서 아는 사람이 보이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돌아서기도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등원하고 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산책로를 피해 한동안 아파트 건물 뒤로 잔디를 밟으며 집을 오간 적이 있었다.


며칠 전, 누군가로부터 ‘커피 한잔’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오랜만이었다. 3초간 고민한 후 덥석 승낙해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만나기로 한 날, 공교롭게도 밤새 핸드폰이 방전되어 약속이 유야무야 취소되었다. 아쉬움보다 다행스러움이 컸다.

나와 친교를 맺고자 제안해준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차마 할 수 없던 말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저는 친교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7년 전 일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온종일 돌보던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와 친교를 맺게 되었다. 아이의 나이보다 개월 수를 말하는 것이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또래를 키우던 엄마여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의 집에 초대했지만 내가 초대를 받아 방문하는 횟수가 훨씬 많았다. 나와 아이가 놀러 갈 때마다 상대는 배달 음식을 시켜놓았다. 음식값을 혼자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매번 얻어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몇 차례 얻어먹기도 하고, 내가 돈을 내거나 둘이 나누어서 음식값을 결제했다.

모든 것이 다 부담이었다. 서서히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당시 유행이던 ‘백종원 만능 양념장’을 만들었다며 연락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갑오징어를 넣은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 집에 찾아왔다. 대단지 아파트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위치한 거리를 아장아장 걷는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서.

억지로 웃으며 부침개를 받아들었다. 현관문을 닫고는 몸서리쳤다. 그리고 부침개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접시를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피해 다녔다.


몇 개월 후 그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굴이 퉁퉁 붓고 살이 급작스럽게 찌는 질환이었다. 그리고 더 얼마 후 이혼 소식을 들었다. 두 아이의 양육권을 경제력을 가진 남편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에 한동안 멍해졌다. 하지만 나는 끝내 접시조차 돌려주지 못했다.

쓰다 보니 드는 생각. 나는 정말인지 바닥이다. 인간성 바닥. 과거 시제이고 싶다. 나는 이런 후진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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