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화날 때마다 물건을 던지는 엄마
육아 십 년 차. 아직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다. 방금 아이는 해먹에서 놀다 바닥에 떨어지고는 자신을 잡아주지 않은 엄마를 탓한다. 쐐기를 박듯 기어코 한마디 한다.
“엄마는 내가 다치길 바라지?”
미안하다고 괜찮냐고 묻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꾹 참았어야 했는데 아이의 말에 버럭하고 말았다.
“세상에 아이가 다치길 바라는 엄마가 어딨어!”
아이는 토라져 울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다.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많이 더울까 싶어 선풍기를 가져다주니 아이는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불을 들추니 아이의 뒤통수까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아이는 왜 화가 난 걸까. 홧김에 나도 말이 막 나가기 시작한다.
“왜 그래?”
“......”
“왜 그래? 엄마가 안 잡아줘서 그래? 머리 부딪혀서 기분이 안 좋아?”
“내가 언제 안 잡아줘서 그렇대?”
“그럼 왜 그래? 엄마가 싫어서 그래?”
“응. 싫어서 그래.”
더는 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나의 노력을 매번 무산시키는 아이에게 나도 쐐기를 박는다.
“평생 그렇게 싫어해라.”
방문을 쾅 닫고 거실로 나왔다.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없는 시골 집은 무척 덥다.
책장에 올려진 손 선풍기를 켰지만 소리만 시끄러울 뿐 몸의 열도, 마음의 열도 식히지 못 한다. 홧김에 선풍기를 내던졌다. 선풍기는 바닥에 부딪히며 건전지가 빠져 꺼져버렸다.
다 던지고 부수고 싶었다. 리모컨을 벽에다 힘껏 던지고 나서 테이블에 올려진 잡동사니들을 한꺼번에 내치고 싶다. 아니, 테이블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싶다. 화가 날 때마다 나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물건을 던지는 것도 중독이다. 무언가를 있는 힘껏 내리치는 짧은 순간만큼은 화를 잊을 수 있다. 나를 열받게 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잠시 잠깐 벗어날 수 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도 나는 물건을 던져서 분노를 표시했다. 집에 있는 유리컵을 주방 바닥에 모조리 던져서 깨버린 적도 있다. 먹던 라면 냄비를 벽에 던진 적도 있다. 플라스틱이 갈라지고 유리가 깨지고 가끔은 옷이 찢어지면, 순간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내가 이만큼 화가 나 있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노에 휩싸여 물건을 던지는 건 결코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내가 물건을 던지면 남편이나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당황에 이은 우선 멈춤. 갈등은 미봉 된 채 상황만 종료되었다.
남편은 자리를 피하는 식으로, 아이는 순간 공포를 느껴 짜증을 멈추지만, 우리 사이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한 공간에서 서로를 애써 무시하며 각자 할 일을 한다. 한 공간에 있지만 절대 같이 있을 수 없는 불편한 공기가 서로를 감싼다.
분노에 따른 폭력적인 반응은 역효과가 많다. 언젠가 짜증이 난 아이가 제 물건을 던졌다. 그런 행동은 나쁜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행동을 아이에게 가르친 장본인이 바로 나이니까.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폭력적인 행동은 쉽게 전달된다.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때려 부수던 사람은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였다. 작은 물건부터 시작해서 큰 가전제품까지. 아버지는 점점 더 크고 비싼 물건을 보란 듯이 던지고 부쉈다.
어린 마음에 물건이 아깝기도 하고 저러다 정말 집에 불을 지르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행동을 끔찍하게 싫어했으면서 그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폭력이라는 건 습득되긴 쉬워도 그 사슬을 끊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화가 나서 물건을 던졌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 폭력적인 모습으로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 그것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가했다. 나는 정말 무능력한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