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없었다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얼마 전부터 지인이 지내는 공간에 나와 아들이 더불어 살기 시작했다.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두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라는 구성이 조금 낯설기는 해도 방 주인인 지인의 배려로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는 듯했다. 처음 얼마간은.


시간이 지나고 공간에 익숙해지자 내 집에서 하듯 아이를 다그치거나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일과를 마치고 숙제를 시작하는 저녁 시간은 으레 신경이 곤두서있거나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내가 보기에 숙제의 진행이 느려터지거나 쉬운 문제를 반복해 틀리는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아이의 학습 시간을 활용하여 부족한 독서량과 글쓰기, 밀린 일본어 공부를 해보려는 노력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태블릿 PC나 전자기기를 이용한 아이의 학습은 소음이 되어 집중을 방해해 짜증을 냈고 아이는 엄마의 화난 표정에 눈치를 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공간을 우리 모자에게 내어준 죄로 지인은 그 틈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짜증이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날, 지인의 한마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목격한바 나와 아이 사이에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루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마주하는 대상이건만 정말인지 우리 사이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기상, 식사, 등교 준비, 숙제를 포함한 학습, 씻고 잠들기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아이와 나누는 말은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에 가까웠다는 자각이 들었다.


제3자의 눈에 비친 우리 아이는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수다쟁이였고, 엄마는 대화를 포기한 채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겠다고 허둥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그건 꽤나 정확한 분석이다.

아이와의 대화가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었다. 아니,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기보다는 어서 아이가 입을 다물고 정적의 순간이 찾아와 ‘나의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인이 대수롭지 않게 꺼낸 말은 이렇듯 엄청난(!) 각성을 불러왔다. 아이와 대화할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겠다 마음먹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아이의 하교 시간 전 모두 마치겠다 다짐했다.

다행스럽게 아이는 아직 엄마와의 대화를 원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이는 마음과 함께 입을 닫았을 테다.

성에 안 차지만 오전 근무를 마친 후 책을 조금 읽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려면 한 시간 남짓 남았다. 글을 마무리하고 이후의 시간은 읽을 생각, 뭘 좀 써보겠다는 생각 없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겠다. 우리 모자 때문에 자기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쉬지 못했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지인과도 모처럼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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