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내가 그만둔 것
지은이 : 김모씨
리모컨, 전화기, 책, 라면 냄비, 샴푸, 머그컵 6개, 무선 마우스, 숟가락, 밥그릇...... 화가 날 때마다 던졌던 물건들의 목록이다. 아이를 낳고 얼마 후 심신이 지쳐있던 때로 기억한다. 주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설거지를 하는데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분노를 제어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짐과 동시에 개수대에서 세제 거품에 덮여있던 머그컵을 집어 들고 주방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이 내 안에 있던 파괴 본능을 일깨운 듯, 총 여섯 개의 컵을 연달아 던졌다. 감당하기 힘든 분노에 휩싸일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던지는 습관은 그 후로 몇 년간 지속되었다.
무언가를 던지는 행위로 분노를 표출하고 나면 곧 후회가 밀려왔다. 언젠가 아이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읽고 있던 책을 내던졌다. 순간 공포에 휩싸인 아이의 표정을 보고 물건을 던지는 건 그만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물건 던지기는 화를 표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나의 감정 상태를 솔직히 밝히거나 화가 난 이유를 상대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대화로 풀어나갈 성숙함도 부족했다.
올해 초, 삶의 대안을 찾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농촌으로 이주했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도 마음의 평화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도시에서와 다를 바 없이 사소한 일에 평정을 잃고 물건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들 무렵 동네 친구가 생겼다. 매일 이른 아침 만나서 산책을 하며 몇 개월을 보내던 어느 날인가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이 나왔다.
“전 화가 나면 물건을 던져요.”
누군가에게 처음 꺼낸 이야기였다. 지난 몇 년간 던진 물건들의 목록과 부서진 물건들을 치울 때마다 들던 후회와 자괴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던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감정에 대해 말했다.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고 잘 처리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그동안 속에만 담아두던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모두 꺼내놓았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힘을 얻고 바로 그날부터 던지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거짓말처럼 그날 이후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았다. 물론, 사소한 일에 분개하고 펄펄 뛰는 건 여전하다. 요즘은 화가 나면 조용히 손에 쥔 물건부터 내려놓는다.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가 지금 화가 나려고 해.” 심호흡을 하고, 마당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평정을 찾으면 아이가 듣건 말건, 나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어느샌가 아이도 억울함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렇게 나는 물건을 던지는 걸 그만두고 대화란 걸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