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랜만에 공연을 보고 왔다. 노래 중간 가수의 멘트가 있었고,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를 따라 나도 함께 웃었다.
공연이 끝나고 겨우 주차장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함께 관람한 지인과 소회를 나누던 중이었다.
“이런 얘기 하면 김빠질 거 아는데. 솔직히 그들과 나는 유머 코드가 맞지 않았어. 난 그런 유머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럼 어떤 유머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빵 터지는 유머 코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최근에 뭘 보며 웃었더라.
얼마 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다나카 상을 보고 좋아라 했던 기억이 났다. 방영한 지 20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회자 되는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천국의 계단> 속 명장면은 몇 번을 반복해봐도 늘 같은 지점에서 웃음이 터진다. 2016년 신년 특집으로 방영했던 <무한도전-예능총회 편>은 좋아하는 개그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한다.
빵빵 터지던 유머들을 나열해 보니 특정한 코드가 있는 것도 같았다. 그날 공연한 가수의 개그 스타일과 비교하며 지인에게 내가 빵 터지는 개그 코드에 관한, 일목요연하지 못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본인의 부족함을 웃음 소재로 삼는 자기 비하 형(?) 개그를 좋아하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본인의 늙음을 드러내거나 어쩔 수 없는 지질함, 속물근성과 같은 숨기고 싶은 모습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희극인이지 싶다. 한편 배경지식이 다소 요구되는 고급 유머는 안 좋아한다.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에서도 나의 웃음 코드에 맞는 장면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고집을 꺾지 않고 여전히 우기기 대장인 아버지는 시트콤 속 신구 할아버지 같다. 술만 마시면 서로의 흠을 소재로 환상적인 티키타카를 보이는 지인 부부의 모습에선 신봉선과 장동민이 보인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상처에도 엄살을 부리는 어떤 이는 여러 면에서 하는 짓이 꼭 박영규 같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웃음 포인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나의 기분에 따라 웃음의 종류가 폭소에서 냉소로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어떤 날은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우김이 우스꽝스럽다 못해 귀여울 지경이고 또 다른 날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저으며 외면하고픈 장면이다.
그러니까 결국엔 나의 기분 문제인 건가. 기분이 좋은 사람만 앉혀둘 수도 없는 일이고. 사람들을 웃기는 희극인이라는 직업이 더욱더 위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