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난 꽤 열심히 살고 있다. 일정을 정리하려고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배송을 기다리며 머릿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요즘 하는 일을 지면에 정리해보기로 했다.
1. 나는 직장인이다.
9시부터 점심 식사 전까지 사무실 근무를 한다. 블로그에 유학 센터 소식도 올리고 아이들 사진도 그때그때 정리한다. 복사나 일지 쓰기와 같은 업무도 한다. 물론, 상사가 자리를 비우면 개인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동안은 뭐라도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게 바로 직장인의 삶 아닌가.
2. 매일 글을 쓴다.
알람은 6시에 울리지만 약 30분 동안 잠과의 사투를 벌이다 책상에 앉곤 한다. 바로 글이 나올 리 없기에 이것저것 뒤져보다 2~30분이 금세 지난다. 7시를 넘기면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어려워지므로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한 편의 글을 쓴다.
삼시 세끼 대신 하루 세 차례 글쓰기가 목표이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요 며칠, 저녁 먹고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장편 소설을 이어서 쓰고 있다. 지지부진, 하루에 한 페이지 넘기기 어렵지만 그래도 쓴다는 게 중요한 거다.
3. 원서 읽기
매일 원서를 읽는다. 지난달 사피엔스를 다 읽고 지금은 총균쇠를 읽고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낭독과 묵독을 번갈아 한다. 총균쇠를 원서로 읽다니, 칭찬받아 마땅한 일 아닌가. 완독하는 날, 홀로 거하게 책거리를 할 거다. 몇 개월이 걸리려나.
4. 벽돌책 한 챕터 읽고 독서보고서 쓰기
매주 월요일, 도서관 수업을 통해 인연을 맺은 강사님에게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 책을 읽고 자기가 맡은 챕터를 정리해 발표하는 수업이다. 이번 책은 내가 맡은 분량이 아니더라도 독서보고서로 정리하며 읽어나가고 있다. 분량이 많아 매일 한 챕터씩 읽고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5. 박완서 장편 소설 전집 읽기
작년 지인에게 박완서 장편 소설 전집(총22권)을 선물 받았다. 방금 여덟 번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여정의 반도 오지 않았지만 벌써 얻은 게 많다. 여자로 태어나 ‘나’로 사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임을, 그리고 그만큼 가치가 큰 일임을 매일 깨닫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작품 세계가 변하는 걸 알아보는 일도 독서를 통해 얻은 즐거움 중 하나이다.
6. 과학책 읽기
하루의 마무리는 과학책으로 한다. 잠자리에 누워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읽는데 챕터의 분량이 비교적 짧은 편에다 작가의 뛰어난 유머 감각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한 챕터 씩 읽어 나가고 있다. 쿼크니, 판게아니, 어려운 용어 덕에 잠이 솔솔 오는 건 보너스랄까.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이가 있다면, 잠자리에서 과학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7. 돌봄 보조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유학 온 초등학생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돌봄 업무를 돕고 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거나 하교 시간에 맞춰 출입문을 여는 등 사소하다면 사소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세 명의 아이들이 방에 드나들었고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노트북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제 저녁 준비를 하러 슬슬 주방에 갈 시간이다.
대충 요즘 하는 일은 다 적은 것 같다. 충분히 애쓰며 사는 걸 인정하려고 시작한 글인데 차일 피일 미루고 있는 새 책 작업이나 신간 읽기, 좋은 영화 챙겨 보기 등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루를 더 알차게 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끝없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살고 있는 거다. 뭐라도 더 해보려다 번아웃 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