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마음껏 홀로 시간을 즐기리라는 열의에 불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샀다.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 놓고 어서 나만 남겨지길, 그러니까 빨리 사람들이 떠나주길 초조하게 기다린다. 사람들을 공간과 마음에서 훌훌 떨쳐버리고 차가워진 맥주와 안줏거리를 들고 방으로 향한다.
완벽한 휴식을 위해 맥주캔을 따기 전에 텔레비전을 켜고 적당히 가벼우면서 재미있는 볼거리를 찾아 채널을 탐색한다.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렸건만, 볼만한 게 없을 땐 편성표를 뒤져 프로그램을 몇 개 찜해둔 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댄다.
드디어 점찍은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자축이라도 하듯이 그제야 맥주캔을 딴다. 혼자 즐기기로 작정한 뒤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대게 정해져 있다. ‘라디오스타’, ‘나는 솔로’, ‘사랑과 전쟁’ . 가끔 ‘금쪽같은 내 새끼’.
시원한 맥주와 주로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쫓기듯이 연거푸 입에 털어 넣는다. 음식의 맛과 맥주의 목 넘김 따위를 즐길 여유는 없다. 가벼운 먹거리와 함께 한 캔의 맥주는 금세 동나고 만다. 여기서 멈출 수 있다면 남은 하루는 절대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상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여분의 맥주를 가져오기 위해 주방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열고 맥주를 꺼내며 평소라면 입에 대지 않을 먹거리를 넉넉하게 챙긴다. 남은 하루와 함께 소화기관까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방금 취했던 똑같은 자세로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음식과 맥주를 흡입한다. 두 번째로 가져온 음식과 맥주가 동나면 잔해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대강 치운 후 자리에 눕는다. 시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지루해지거나 중간 광고가 보기 싫어지면 스마트 폰을 켜고 OTT 서비스로 2년 전 방영된 ‘나는 솔로’ 1기를 틀어둔 채 텔레비전과 스마트 폰을 동시에 보기 시작한다.
더부룩함을 견디기 힘들 때는 화장실에 가서 음식을 게워내기도 하는데, 갑작스러운 폭식으로 소화기관이 먼저 탈이 날 때도 있다. 어제가 그랬다.
화장실을 수시로 오가는 사이에 사람들이 돌아오고 혼자만의 시간은 거기서 끝이다. 벼르고 벼르던, 상상만 해도 콧바람이 나오던 꿀 같은 몇 시간은 폭식 후 배탈이라는 최악의 결과만 남기고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그 후로도 이어지는 잦은 화장실 방문으로 독서나 글쓰기와 같은 남은 일과에도 지장을 주고 말았다.
하루를 완벽하게 망치고 자리에 누웠다. 짐승처럼 음식을 몰아 먹고 배출했다는 자괴감과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찝찝함에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다.
나는 정기적으로 하루를 망친다.
하루를 망치지 않기 위해 루틴을 정하고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할 일을 적고 지워나간다. 나태함이 끼어들 새 없이 눈 뜨면 손을 뻗어 어제 아침에 읽던 책을 이어 읽고 수영 가방을 챙겨 씻을 겸, 차를 몰고 나간다. 운동을 마치면 몸도 마음도 깨끗해져 집으로 돌아와 연료를 채우듯 점심을 먹고 이후의 일정을 이어간다. 저녁에는 쓸 게 없어도 책상에 앉아 ‘도무지 쓸 게 없다.’는 매일 똑같은 푸념을 늘어놓다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 누워 책을 읽다 스르륵 잠에 든다. 이런 하루는 특별할 것 없어도, 나에겐 충분히 완벽한 하루다.
완벽하지만 조금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병이 도지듯, 하루를 망치는 습관. 어떻게 고쳐볼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