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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09. 2024

전원의 삶

농촌생활 이야기

 올해로 농촌 생활 3년 차가 되었다. 글쓰기에 뜻이 있는 걸 아는 주변 몇몇 사람들은 농촌에서 사는 이야기를 써보기를 권한다. 시골 분교에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혹은 농촌에 적응해가는 도시인의 체험담 같은 걸 말하는 것 같다. 

 몇 차례 써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농촌 생활을 잘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상상력의 한계인지, 농촌에서의 삶이라면 으레 텃밭을 가꾸고 산책을 즐기며 건강한 먹거리로 하루 세끼를 채워가는 삶, 이방인으로 시작해 이웃 주민들과 정을 나누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을 떠올렸고 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3년 차를 맞아 뭐라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 생활을 끝내고 도시로 돌아가면 이 생활이 그리울지언정, 어렵게 기억을 더듬으며 지난 일을 추억하는 글을 쓰게 될 것 같지 않아서다. 구체적 증거(?)를 남기는 기분으로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어제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유학 온 아이들이 다수가 재학 중인 분교에서는 방학 기간 중 3주 동안 돌봄교실을 운영한다. 아이들은 평소와 비슷하게 통학 버스를 타고 등교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점심 식사를 마친 후 3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부모라면 누구나 방학 기간에 학기 중 부족했던 공부를 보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독서 시간을 늘리고 문제집 풀이로 지난 학년 과정을 복습하기로 아이와 어렵게 타협했다. 

 마을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이끌고 방으로 향했다. 독서 시간 확보를 위해서다. 순조롭게 책 읽기를 시작했으나 읽던 책을 예상보다 일찍 완독해 1차 위기를 맞았다. 아이는 다 읽은 책 중 한 권을 다시 읽어보겠다며 골라왔다. 그렇게 재독을 시작하려는데 창문을 통해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친구들은 소리 높여 서로를 부르고 공을 차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렇게도 방음이 되지 않는 창문이라니. 아이는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티가 역력했다. 

 ‘독서를 저녁으로 미루고 아이를 놀게 해줘야 하나.’ 옆에서 함께 책을 읽던 나도 어느샌가 집중력을 잃었다. 눈으로 글자를 읽을 뿐, 방금 읽은 문장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잠시 후 아이도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이렇게 쉽게 양보할 순 없다는 각오로 남은 독서 시간을 채웠다.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갔다.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채운 한 시간의 독서가 아이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마음이 조금 착잡했다.

 저녁을 먹은 후 수학 문제집을 풀면서도 위기를 맞았다. 아이가 생각보다 문제를 잘 풀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고, 더하고 빼는 단순한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하기 싫은 거구나’ 싶어 충격은 배가되었다. 아이는 문제집을 풀고 지난 학기의 내용을 복습하는 과정에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그저 밤늦게까지 문제집을 들이밀고 풀어보라고 닦달하는 사람인 것이다. 

 어쨌든 목표한 분량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독서도, 문제집 풀이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하는 일을 싫어해서 공부는 어떻게 하나. 벌써 고학년이 되었다는 위기감에서 아이의 중고등, 대입까지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방에 돌아와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겨우 하루 해놓고 이러면 안 되지. 지난 2년 아이도 나도 긴장을 풀고 공부를 등한시하고 지냈다. 올해부턴 달라지라 마음먹고 실천한 게 바로 오늘부터다. 앞으로 수많은 고비와 갈등,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원망과 미움이 펼쳐질 것이다. 

 

 어째 3년째 들어서는 농촌 생활도 그리 전원적이진 못할 듯하다. 창밖을 보니 날이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옥 지붕 너머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가 보인다. 전원적인 풍경 속에서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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