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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09. 2024

<성적표의 김민영>을 보고


새벽 4시에 재생버튼을 누르고 동틀 무렵까지 본 영화다.

 

 청주에서 기숙형 고등학교를 다니는 민영과 정희, 수산나는 삼행시 동아리 회원으로 별거 아닌 일에 웃고 우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졸업 후 민영은 다른 도시의 대학에 진학하고 수산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대학 진학에 별 뜻이 없는 정희는 홀로 청주에 남아 테니스장에 취직한다.


 각자 먼 지역에 떨어진 셋은 온라인으로 삼행시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지만 오래지않아 미국에서 한낮에 모니터앞에 앉아있던 수산나가 시차를 배려하지 않은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비치며 모임은 와해될 위기다.

 군대간 오빠가 비운 집에 머무는 민영은 고향의 정희를 초대하고 정희는 트렁크 가득 언젠가 민영이 작성한 버킷리스트 목록을 지우기 위한 짐을 싸들고 서울을 찾는다. 


 하지만 한 학기 사이에 민영은 실연의 상처를 입은 미국의 수산나 만큼이나 많이 변해있다. 고등학교 시절 작성한 버킷리스트는 바보같은 짓일뿐이며 대학 편입과 이를 위한 기말고사 성적 정정만이 유일한 관심사인듯 보인다. 

 변한건 자신이면서 여전히 그자리에 머물러 그 때의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는 정희에게 '4차원으로 보이고 싶냐'고, 정희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해서도 '서울의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도 성공하기 힘든데 되겠냐'며 상처를 준다. 민영은 그렇게 사회의 '어른'들이 할 법한 말들을 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민영은 고등학생 신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편입한듯 보인다. 그런 민영에게 친구의 머무름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민영이 '대한민국 스무살'의 세계에 편입하는 과정도 그리 수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애써 지우려 노력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 속에서 홀로 외로워하기도 한다.  


 열 아홉과 스물은 한 살차이지만 삶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오는 시기다. 보통의 스무살들은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유를 만끽 할 새도 없이 사회는 이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은 추억으로 덮어두고 제대로 된 성인이 되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다시 말해 취업 준비를 하고 비전(돈)을 가진 목표를 정해 그것만 바라보고 나아가라고 무언의 압박을 한다. 세상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거나 노력을 하는 정희와 같은 스무 살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이 정한 성적표에 맞추느라 스무 살은 즐거움이나 추억, 엉뚱한 호기심과 같은 영역엔 도무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영화가 끝날 무렵 정희는 민영의 서울집을 떠나며 '경제력','패션과 감각','사회성','인간관계','베품','마음과 행동','한국인의 삶'과 같은 과목(?)으로 구성된 성적표를 친구에게 남긴다. 


 40대의 나는 사회가 정한 과목들에 어떤 평점을 받고 소중한 사람들이 정한 과목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F'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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