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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Jan 10. 2024

농촌 유학의 (의외의) 장점

농촌의 삶

 아이는 농촌 유학의 세 가지 유형 중 ‘센터형’에 참여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가족 체류형’으로 농가와 6개월 단위로 임대계약을 맺고 보호자와 아이가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나 역시 가족 체류형으로 농촌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도에서 이삿짐을 싸서 2월 말 이사 한 후 1년 동안 매달 월세를 내며 아이와 함께 지냈다.

 두 번째 유형은 ‘농가 홈스테이형’으로 학생이 인근 농가에서 농가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는 형태라고 한다. 아이가 재학 중인 학교에는 지금까지 홈스테이형 참여 유학생이 없었다. 농가 부모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라니. 흥미로운 발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센터형’은 쉽게 말해 기숙사와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며 먹고 자는 생활을 말한다. 현재 우리 아이가 여기 해당한다. 1년간 가족 체류형으로 지내다 이듬해 새학기를 맞아 이삿짐을 정리하고 센터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 원래 일반적인 센터형 참여 학생들은 부모가 수도권에 머물고 아이들만 떨어져 지내는 방식이지만 나는 유학 센터에서 양해해주어 센터 일을 도우며 한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 쓰려는 글은 농촌 유학이 가진 ‘의외’의 장점들에 관해서다.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변화를 감수하면서 아이를 농촌으로 유학시키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교사당 학생 수가 적은 점, (비용이 지원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 도시를 벗어난 자연에서의 삶, 사교육과 경쟁에서 벗어나 인성이 발달할 기회 등등. 나도 비슷한 이유로 농촌 생활을 결심했다.

 농촌 유학 3년 차, 미처 생각지 못한 장점들도 많다. 생태나 인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말고,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농촌 유학의 장점을 소개해 보려 한다.     


1. 스마트 폰 통제

 아이들의 스마트 폰 사용 시간을 두고 집집마다 갈등이 많을 것이다. 저학년까지는 부모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고학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센터에서는 하루 한 시간 정도 전자 기기 사용 시간을 허락한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게임, 영상 시청을 마치고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허락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핸드폰은 종일 반납함에 둔 상태이다. 

 통학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가고 방과 후에는 센터에 돌아와 마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단체로 활동하기 때문에 따로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어서인지 아이들도 굳이 전화기를 찾지 않는다. 

 아들은 요즘 부쩍 귀여운 단계(?)에서 벗어나 눈빛에 반항기가 보이는 게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도시에서 학교에 다녔다면 하교 후 학원에 다녀 아이의 동선 파악을 위해서라도 핸드폰을 쥐어 주었을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부모의 감시가 없는 동안 아이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릴 테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핸드폰을 반납하네, 마네 입씨름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농촌 유학을 하며 센터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런 걱정이 없다. 물론, 2주에 한 번 상경한 후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이나 한 달 남짓의 방학 기간에는 아이와 스마트 폰 사용 시간 조율 및 부모의 적절한 통제는 각 가정의 몫으로 남는다.    

  

 2. 늘어난 ‘말할’ 기회, 커지는 목소리

 언젠가 유학 생활을 하며 일 년이 넘게 아이를 지켜본 마을 어른이 말했다. ‘00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이는 나를 닮아 자기표현에 서툴다. 아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또래와 함께 있을 때도 목소리가 작은 편인 아이는 어른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센터에 머무는 아이들은 승합차로 이동을 하는 일이 많다. 앞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이동하는 내내 질문을 쏟아내거나 저희들끼리 떠드는 소리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는데 아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 적은 거의 없었다. 

 아직도 조용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요즘은 간간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하던 아이가 어른에게 목소리 높여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한다.

     

3. 공부는 반에서 2등, 축구는 전교 1등

 종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일이 있었다.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 평가였지만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결과를 물었다.

 아쉽게 틀린 문제가 있다며 답하던 아이가 그래도 반에서 공부로는 2등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참고로, 총 5명으로 이루어진 학급이다. 아이의 대답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축구로는 전교에서 1등이라며 부연 설명을 하는 아이는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상경한 주말, 아이와 함께 방학 기간 수강할 축구 교실에 등록했다. 상담을 하러 방문한 학원에는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풀 착장을 한 채 주말 수업을 듣고 있었다. 도시에서 다년간(?)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익힌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기죽지는 않을지, 오히려 자극을 받을지 궁금하다. 

 도시의 학교에서라면 반에서 2등, 전교에서 1등이라는 자부심은 얻지 못했을 테다. 우물 안 개구리라 할지라도, 그런 자신감을 가져보는 건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경험이 될 거라 믿고있다.      


 4. 먹고 자는 일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는 일, 끼니마다 좀 더 많이 먹으라고 재촉하는 일에서도 해방이다. 기상을 알리면 아이는 알아서 일어나 등교 준비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에도 스스로 배식한 후 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다. 모든 일은 스스로, 센터 친구들과 함께이다. 굳이 잔소리와 간섭을 얹지 않아도 일상이 굴러간다. 

 단체로 급식을 먹다가 상경한 주말이면 집밥을 먹는다.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최고라든가, 이 맛이 그리웠다는 입에 발린 말도 제법 늘었다. 부디 이곳에서 몸에 익힌 습관들이 유학 생활을 끝낸 후에도, 아니 평생 아이에게 자산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5. 무엇보다 관계 개선 

 가뜩이나 불안이 높은 편인 엄마로 인해 아이와 갈등이 많았다. 주로 학습 문제를 놓고 시작한 갈등이 평소 생활 습관이나 친구 관계까지 전방위로 뻗어나가 고성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열공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기감을 불어넣는 주변인의 부재 때문인지 ‘아이의 공부’에 조금 느긋해진 것도 사실이다. 

 심신이 건강하고 친구 관계 원만하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이해하고 꾸준한 독서를 하는 것이 아이가 잘 지낸다는 것의 기준이 되었다. 

 물론 도시의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언젠간 ‘내 아이의 일’이 될 입시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올 지경이지만 원만한 관계와 아이에 대한 믿음으로 잘 헤쳐나가고 싶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외엔 별 대화가 없었는데 요즘은 아이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다. 아이가 엄마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엄만 어떻게 그렇게 두꺼운 책을 읽어. 난 힘들던데.’,‘엄마, 무슨 공부해?’ 같은.

 여러모로 농촌 유학 전보다 우리 관계가 좋아진 건 분명하다.     


 농촌 유학을 하며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몇 개 적어보았다. 그 외에도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습관, 외동이라 경험하지 못했던 형제자매 간접 체험, 국내외 여행 기회 등등 장점은 이렇게나 많다. 적고 보니 새삼스럽다. 

 올해에는 장점 목록에 ‘글 쓰는 시간 확보’, ‘글감이 널려있는 일상’, ‘깊이 있는 독서 및 사색 가능’, ‘산책 습관’ 등을 더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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