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
요즘 세상 모든 일을 나만의 정의로 내리는 것에 꽂혔나보다. 살면서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단어들을 사전으로 뒤적여보고 사전상 정의와 내가 내린 정의를 비교해보는 일이 늘었다.
가족: 혼인한 부부나 부모 자식, 형제자매 관계인 사람들.
<보리 국어사전>에 따른 정의다. 혼인을 기반으로 한, 흔히 일컫는 ‘정상 가족’의 범위로 한정하고 있다.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며 등장인물 소라와 나나와 나기의 관계를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웃’이나 ‘친구’, ‘지인’으로 명명하기에는 영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이 만난 책의 초반부터 내 마음속 떠오른 단어는 바로 ‘가족’이었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이다. 그들의 관계는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한 ‘가족’임에 틀림없다. 소라와 나나는 톱니바퀴에 상반신이 끼어 들어가 목숨을 잃은 금주씨(아버지)와 사고 후 이미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애자씨(어머니) 부부의 자녀이다.
남편을 잃고 죽기로 작정한 애자씨와 두 자매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만나게 된 나기 역시 편부모 가정의 아이다. 나기의 어머니인 순자씨는 시장에서 과일을 팔아 생계에 바쁜 와중에도 이웃집 아이 소라와 나나 자매의 도시락을 챙긴다. 이미 육아를 비롯해 가정을 책임지는 능력을 상실한 애자씨를 대신해서였다. 그렇게 소라와 나나는 순자씨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성장한다.
나기와 두 자매는 많은 끼니를 함께 먹고, 부모가 부재한 시간을 셋이 어울리며 커나간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관계는 계속된다. 나기가 연 ‘삯’이라는 식당에 자매가 방문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묵은 김치로 만두를 만드는 일을 함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린 시절을 포함해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관계를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렸다.
책에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상’ 가족이 딱 하나 나온다. 나나가 가진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이며 그녀가 결혼을 염두하고 있는 ‘모세’의 가족이다.
인사차 방문한 모세의 집에서 펼쳐진 풍경을 보고 나나는 의아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에 어색해 서로의 얼굴 대신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 ‘남편의 요강을 비우는 아내’라는 관계가 당연시 여겨지는 그들이 그녀는 너무나 생경하다.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나나의 통보에 모세는 당황한다. 그는 두 자매와 함께 자라 여전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기를 찾아가 묻는다. 나나를 사랑하냐고. 모세에게 남녀 간의 사랑이란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성애를 바탕으로 한 ‘그런 관계’.
나기는 그런 모세에게 말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식. 어떤 이들에게 가족은 딱 그 범위까지다. 그것을 벗어난 것은 ‘가족’이 아니라고, 그 너머를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나나와 소라 자매와 우기는 가족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많은 끼니를 먹으며 성장했고 서로를 보듬는다. 힘들 때 함께 해주고 서로가 믿는 걸 지켜주고 격려한다. 나는 그런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결혼이란 제도와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함께 밥을 먹고(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서로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해주는 것, 상대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진심과 표현. 때로는 위험한 결정을 하는 상대를 그저 지켜보며 함께 하는 것. 그런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
틀에 박힌 표현이지만 사람은 섬이 아니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혈연이냐 아니냐, 사회적인 인정을 받았는지 여부를 떠나 우리 곁에는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불안함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희미한 꿈을 나누고 싶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나의 가족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