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래에 가장 많이 웃은 영화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터졌다. 어떤 장면에서는 입을 막아도 끅끅,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거, 코미디 영화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캐릭터 열전이다. 뭐하나 버릴 캐릭터가 없다. 심지어 영화 내내(영화속 영화에서도) 호흡기와 각종 줄을 연결한 채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박정수의 남편을 연기한 배우도 웃겼다.
맥락없이 웃기고, 역설적이라 웃기고, 곱씹을 수록 더 웃겼다. 최근에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이 웃었던 적이 언제였나 떠오르지 않는다. 웃기기를 작정한 대놓고 '나, 코미디요.'라고 말하는 영화보다 백배, 천배는 웃겼다.
나는 OTT서비스를 이용해 한밤중 스마트폰으로 보았는데 극장에서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배꼽을 잡고 다함께 폭소를 터뜨렸을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2. 이것은 감독 자신에 대한 자조인가?
극중 김 감독(송강호)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어느 정도 수치심과 열등감을 가진 인물이다. 선배 감독이었던 신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늘 원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평론가들은 승냥이마냥 김 감독을 비웃고 헐뜯는다. 영화사 대표(장영남)는 인격 모독적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거기다 검열이라는 넘을 수 없는 큰 산 앞에서 납작 엎드려야하는 처지다.
그런 김 감독은 다 찍어놓은 영화의 결말만 바꾸면 명작이 탄생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촬영장을 폐쇄하고 사람들을 감금하는 것도 모자라 숨기고 싶은 자신의 치부마저 드러낸다. 그렇게 인정사정 볼 것없이 작품을 완성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스크린에 펼쳐놓는데 성공한다.
감독이 예술욕을 불태울 수록 주변 사람들은 힘이 든다. 한 배우의 한탄처럼 새로운 각본은 그들에게 '가혹'하기까지 하다. 이해할 수 없는 전개와 캐릭터 변화, 치정과 공포와 엽기가 난무하는 좀 잡을 수 없는 결말까지. 배우들은 프로 정신에 입각해 연기를 해내지만 도무지 그들은 감독과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명작이 될 거라는 감독의 믿음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3. 그럼에도 명작
그럼에도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명작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예술을 위해, 작품 세계를 펼쳐보기 위해 자신의 혼을 불사르는 김감독의 모습에서 뜨거운 '창작욕'을 확인했다. 공감이나 이해를 바라지않고 타협하는 법이 없는 그는 우직하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불안한 인간이었다.
영화는 결과물이지만 또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 때로는 몇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누군가는 넘어지고 부서지며 무언가를 지켜내려 애쓴다. 그에 비해 비교적 짧은 상영 시간 동안 관객으로서 나는 그 결과물을 볼 뿐이다. 누군가의 고뇌와 뜨거운 예술혼, 자기 증명의 욕구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불가능한 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관객으로서 '나는 영화는 왜 볼까' 의문을 가져보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본 적은 있지만, 한번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왜 영화를 만드려하는가' 궁금한 적은 없었다. <거미집>을 보고 처음으로 그런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왜 영화를 만드는가'에서 시작해 '왜 영화가 존재해야하는가'로 이어지는 마음.
영화라는 작업물을 협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도 처음이다. 배우와 스태프들, 내가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수많은 '관계자들'까지. 각자 다른 열망을 싣고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 영화란 과연 어렵고도 매력이 넘치는 세계임에 틀림없다.
극장에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보았다면 환호와 갈채를 보내진 못해도(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마음 한 구석이 찡한 감동을 받았을 것 같다. '명작'을 보았다는 뿌듯함을 더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