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씨 Mar 10. 2024

연체(延滯) 고백

 어제 도서관에 들러 장기 연체 중인 도서를 변상 처리했다. 책은 잃어버린 지 오래요, 연체 기간은 200일을 넘기고 있었다. 구입한 책을 데스크에 내밀며 ‘죄송하다’ 말하며 몹시 부끄러웠다. 공공의 자산을 꿀꺽하고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모른 척하고 지냈으니 부끄러운 것이 당연할 테다. 더 부끄러운 사실은 도서관 연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총 세 건의 연체가 있었다. 

 

-첫 번째 연체, <당신의 노후> 박형서

 

 약 삼 년 전 내가 운영하던 독서 모임의 선정 도서였다. 회원들은 책을 구입하기보단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참여하는 편을 선호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관내 도서관에서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나름 방안을 찾은 것이 예전에 거주했던 지역의 도서관에서 발급받은 도서관 카드로 책을 대출해서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30분 거리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모임을 무사히 마쳤다. 

 책이 필요할 때는 한달음에 달려갔던 도서관이었는데, 반납하러 가려니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반납하지 않은 채 농촌 유학을 떠나고 말았다. 

 

 유학을 하며 보름에 한 번꼴로 상경을 했다. 금요일 저녁 상경을 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주말엔 그간 못 본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거나 미뤄둔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바빴는지 잠깐 반납을 위해 도서관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 는 건 다 핑계다. 나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없었기에 그냥 책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도서관으로부터 연체 안내 문자에 이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화는 오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늘 같은 직원으로부터였다. 매번 다음 주말에 꼭 반납하리라, 거듭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내게 직원은 항상 한결같은 목소리로 반납을 당부하곤 전화를 끊었다. 

 몇 달 전 드디어 책을 반납했다. 결국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는 시간을 내지 못해, 화순까지 챙겨온 책을 우체국 택배로 반납했다. 다음 날 오전 득달같이 반납해주어 감사하다는 문자가 왔다. 한 권의 책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직원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와 함께 경이를 표하고 싶다. 

 

.-두 번째 연체 <이달의 이웃비> 박지영

 

 오랜만에 방문한 친척 집(?)에 책을 두고 오고 말았다. 당분간 방문할 계획이 없어 장기 연체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새로운 책을 사서 대출 기한 안에 반납하면 될 일이지만 염치없게도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약 두 달 만에 책을 찾아 지난주 반납함에 책을 넣었다. 

 

 어제 오전, 200일이 넘은 책을 처리하며 어느 곳에도 연체로 남아있는 책은 없다.(참고로 이 책은 황선미 작가의 <고작해야 364일>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공공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여기저기 연체자로 이름을 올리다니, 나 많이 혼나야겠다. 난데없는 자기 고백과 반성에 이어 앞으로는 성실한 도서관 이용자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알바 시작하고 일주일 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