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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r 20. 2024

온전한 한 마리

 지난 주말 미뤄왔던 옷정리를 했다. 농촌 생활을 마무리하며 싸 온 커다란 옷 가방 세 개에 둘러싸여 지내다 큰맘 먹고 옷장을 두 개 들였다. 옷으로 가득한 커다란 캔버스 백 세 개를 비우고, 그중 하나는 버릴 옷으로 다시 채웠다. 아침부터 김밥을 싸서 가족들을 먹이고, 도서관까지 다녀온 후였다. 정리를 마치니 저녁밥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배달로 해결하자니 아이도 남편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항상 주문하는 ‘골드킹 콤보’를 시켰다. 닭 다리와 닭 날개로만 구성된, 퍽퍽살이 없는 메뉴이다. 행여나 양이 부족할까 감자 튀김도 함께 결제했다. 

 

 음식이 도착하자 아이와 남편은 음료와 맥주를 꺼내왔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닭 다리를 뜯기 시작하자, 나는 주방으로 들어서 아침에 먹고 남은 김밥을 담아둔 통을 열었다. 김밥을 몇 개 집어 먹는데 남편이 ‘왜 김밥을 먹냐’며 함께 치킨을 먹자고 불렀다. 배달 음식을 늘어놓은 테이블에 앉아 닭봉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남편과 아이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쉬지 않고 치킨을 먹었다. 치킨 상자를 보니, 남기는커녕 둘이 먹기에도 부족하다 싶은 양이었다. 닭봉 하나를 먹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김밥을 몇 개 더 집어 먹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예전에 온전한(?) 닭 한 마리를 배달시키면 퍽퍽살은 주로 나의 몫이었다. 나도 커다란 닭 다리부터 한 입 베어 물고 싶었으나 어쩐 일인지 양보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무리 퍽퍽한 살이라도 갓 튀긴데다, 간이 배어있는 치킨은 충분히 맛있었고 그것만으로 괜찮았다.

 언젠가부터 다리와 날개로 구성된 ‘콤보’ 메뉴를 배달해서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셋이 먹어도 그럭저럭 충분한 양이었는데, 아이의 먹성이 좋아지면서 남편과 아이, 둘이 먹기에도 부족했다. 넉넉하게 한 마리 반을 주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게 여겨졌다. 다이어트도 할 겸, 따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치킨이 오른 식탁에서 빠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배달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드문 편인 우리 집은 한 달에 한두 번 치킨 아니면 피자, 딱 두 가지 메뉴만 시켜 먹는다. 배달된 피자를 함께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요즘엔 라지 피자의 여덟 조각 중 아이가 다섯, 남편이 세 조각을 먹는다.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도 아니고, 함께 먹부림을 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도 아니건만 배달된 음식에서 나의 몫을 챙기거나, 나의 몫을 포함해 넉넉하게 주문하는 일은 도무지 실천하게 되지 않으니 ‘왜 이리 궁상맞게 살고 있나’에 이어 ‘누가 알아준다고’까지 푸념이 이어진다. 

 

 방금 무심코 소셜 미디어의 광고에 뜬 치킨 할인 쿠폰을 보고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고 속 이미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온전한 치킨 한 마리 사진이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골드킹’도 ‘콤보’도 아닌 닭 목과 퍽퍽살이 함께 달짝지근한 양념에 버무려진 온전한 치킨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언젠가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고민 없이 좋아하는 치킨 브랜드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한 후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맥주와 함께 하리라 다짐하며 할인 쿠폰이 적용된 기프티콘 구매 버튼을 조용히 눌렀다. 선물함 속에 담긴 치킨 이미지를 보니 싱긋 웃음이 난다. 혼자만의 치킨 파티를 기약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이제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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