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금쪽이를 본다

by 김모씨


처음 엄마가 되어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육아가 낯설고 어려웠다. 주변을 보면 친정엄마나 조리원 동기 혹은 ‘맘카페’라 불리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료(?)들로부터 실질적인 조언과 공감, 위안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불행히도 나에겐 그런 존재가 없었다. 언제든 달려와 줄 친정엄마는 물론 먼저 손을 내미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나는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겠다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면서도 어리석었던 선택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곳이 있었으니, 대한민국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의 대표 격인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매주 금요일 밤 아이를 재워놓고 챙겨보거나 여건이 되지 않으면 다음 날 결제를 해서라도 꼭꼭 챙겨보곤 했다. 얼마 후 OTT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얼마든지 반복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이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 부모와 자녀의 평소 모습을 관찰한 후, 정신건강 의학 전문의이자 방송인인 오은영 박사가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공하여 가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매주 소개되는 가정의 모습과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다양했지만 그들의 모습 어딘가에는 반드시 내가 공감하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존재한다.’ 혹은 ‘사실, 진짜 금쪽이는 바로 부모였다.’ 등 누구나 아는 결론에 대해 식상함을 느끼거나 솔루션을 통한 변화의 지속성에 대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만 혼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육아의 어려움이 극에 달해 무너지려 할 때는 도벽이나 자해 등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보고 ‘내 아이는 저 아이보단 낫다’라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런 위안에 더해 <금쪽이>는 나의 육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에피소드에 소개되는 솔루션들을 직접 따라 해 보며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도 했다.

아이가 유아기를 벗어나며 언제부턴가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되었다. 나의 육아가 완벽했다거나 아이의 문제 행동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웬만한 문제는 무던히 넘어가게 되었고,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육아법이나 자녀와의 관계 개선 같은 것들에 예전만큼 에너지를 쏟지 않았고 어딘지 냉소적인 태도로 취하게 되었다.


다시 <금쪽이>를 찾아보기 시작한 건, 몸으로 하는 육아를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느라 애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는 오히려 엄마의 부재를 반겼다. 아이와 꼭 붙어 지냈던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돌봄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막연한 어려움을 느끼고 다시 찾은 곳은 6년째 같은 시간에 방영 중인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에피소드 목차를 확인하며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나오는 편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밥먹기를 거부하거나 장난감을 던지고 친구를 무는 유아들의 모습을 보며 공감하던 마음은 스마트 폰 중독이나 등교 거부, 청소년 우울증으로 문제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사춘기 자녀를 돌보며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모습은 여전히 나와 닮아 있었다.

청소년 출연자의 문제 행동 중에는 부모에게 가하는 폭력이 빈번했다. 최근 방영된 에피소드에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가정이 소개되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물건을 던져 창문이 깨뜨리거나 엄마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의 장면이 화면에 나오던 중, 방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던 아들이 거실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자기 또래의 출연자에 흥미가 생겼는지 아들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프로그램을 보던 아들은 나와 달리 자녀의 입장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았다. 금쪽이가 왜 분노했는지 자기 나름의 의견을 말하는 아이를 보며 어쩌면 지금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연자 가정에서 솔루션이 시작되었다.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던 아이는 엄마로부터 유기된 경험이 있었고, 여전히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모자(母子)에게 주어진 솔루션 중 하나는 마라톤에 함께 참가해 서로 의지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었다.

출발할 때 호기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아이는 금세 지쳐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격려하는 엄마의 얼굴엔 자녀에게 맞아 생긴 멍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자녀에게 얻어맞았다는 참담함과 아이를 유기했다는 자책감보다 더욱 큰 건 아이를 잘 키워야만 한다는 책임감이자 아이를 향한 사랑이었을까, 화면을 비친 부모의 마음을 막연하게 짐작해보았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금쪽같은 내 새끼>는 나만 자녀와 씨름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육아 과정에서 큰 실수를 한 부모라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계 회복에 포기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아이에게 사과한다면 그 마음이 아이에게도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사춘기 육아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 그건 정말인지 나에게 큰 위안이자 응원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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