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소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어느 토요일이었다. 요즘 K의 남편은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단둘이 여행을 즐긴다. 주말 이틀 자유를 얻은 K는 도서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과 비슷한 입장, 즉 초등학생을 키우는 전업주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라면 부스스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거기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K는 설레고 행복했다. 버스 도착을 알리는 어플리케이션을 열어보니 버스가 도착하려면 10분은 더 기다려야한다. 급할 것 없는 K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맘 편하게 주변을 관찰하기로 한다. 아직 취학 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을 데리고 K또래의 여성이 정류장으로 들어온다.
“얘들아, 바람이 차다. 이쪽에 와서 서있어.”
K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여자 아이 둘은 꽃무늬 마스크를 쓰고 머리를 곱게 묶었다. K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어제까지 입었을 얇은 가을 옷을 입고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여자 아이 둘은 엄마의 살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겨울옷을 입은 채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거둔 시선이 엄마로 보이는 여성에게 향했다.
‘어? 율이 엄마 아냐?’
아는 얼굴이었다. 코로나 이전, 마스크를 차지 않았던 시절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이였다. 어린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하루 종일 보육을 하던 엄마였다. K의 아들은 병설유치원에 다녔고 하원시간이 이른 편이었다. 아들은 하원 후면 동네 놀이터에서 서너 시간 또래와 놀았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오후 일과의 대부분이었고, 율이 엄마는 오다가다 알게 된 엄마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꾸밀 줄 몰랐고, 오후 내내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 둘을 쫓아다니며 부지런히 간식이나 음료수를 챙기던 사람이었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망설이던 때였다. 율이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이 허공에 혼잣말을 시작한 것은.
아이들은 저희끼리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 통화를 하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율이 엄마는 누군가에게 말하듯 허공을 향해 계속해서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중얼 거렸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율이 엄마를 흘끔흘끔 바라보기 시작했다. 큰 아이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시선을 의식했는지 “엄마, 이리와.”하며 엄마를 잡아끌었다. 그 후에도 율이 엄마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과 놀이터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제 초등 2학년이 된 K의 아들은 하교 후 학원 일정으로 놀이터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예전만큼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도 않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지 않은 2년 남짓의 시간, 율이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K는 그 시간을 힘겹게 보냈다. 친정 엄마를 제외한 누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으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멍하니 앉아 있다 눈물을 흘리고 아이 앞에서 감정을 주체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많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몇 주일 씩 집안에 머무르다 오랜만에 외출한 날,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생각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었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 느낀 K는 현관문을 나서기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사람들은 K의 얼버무리는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별것 아닌 일에 상처를 받아 봉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오열을 한 적도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대화가 편해졌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최근에야 K는 자신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밝은 쪽으로 나왔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세 모녀를 뒤로한 채 K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왜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까?’
K는 차창을 보며 생각한다. 율이 엄마와의 짧은 눈맞춤을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혼잣말을 하는 율이 엄마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가운 시선을 던지는 대신, “율이 엄마, 오랜만이에요. 저 00이 엄마예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하고 인사를 건네지 못한 자신의 무관심을 자책하는 그녀이다.
그녀가 먼저 아는 척을 했더라면. 율이 엄마는 허공에 혼잣말을 하는 대신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율이 엄마도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