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이 내 인생을 바꿨다
‘민음사 세계문학 독서모임 모집’
서가 사이에 놓인 작은 메모가 보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완독은 독서가 취미인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과업이다. 나 역시 잊지 않고 민음사 세계문학 도서를 읽어나가고 있지만 지속성이 문제였다. 그러던 차, 민음사 전집을 한 달에 두 권씩 꾸준히 읽어나가는 모임이라니 구미가 당겼다.
조심스럽게 문의하니, 문의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모임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한다. “둘이서 해볼까요?” 사장님이 농담처럼 건넨 말에 흠칫하긴 하면서도 ‘둘이서 독서모임이라? 신선한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후 서점 블로그에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독서모임 모집 글이 올라왔다. 첫 도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누구라도 모집이 되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참가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게 다시 <이방인>을 읽었다. 어디에선가 읽었다. 고전은 누군가 “뭐 읽고 있어?” 하고 물었을 때 “응. 나는 000을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한 번 읽으면 고전이 아니라는 이야기인가.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라는 말 같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번 읽은 책이 없다. 양에 치우친 독서, 읽어내기에 급급한 독서의 폐해다.
다시 읽은 <이방인>은 처음보다 훨씬 좋았다. 1부에서는 주인공 뫼르소가 어떤 인물인지 꽤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2부가 시작되고 뫼르소가 판사와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책을 읽다가 혼자 박장대소했다. 판사의 모습에서 “내가 믿는 걸 어떻게 안 믿을 수 있냐고?” 아들에게 분노하던 내가 보였다. 흔들림 없이 자기가 보는 것을 보고, 믿는 것을 믿는 주인공을 보며 도대체 나에게는 확고한 신념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해보게 되었다.
확실히 두 번째 독서가 좋았다. 남들이 좋다는 고전을 어렵게 읽은 후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고,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공감하지 못한 책들이 많다. 처음 읽은 <이방인>도 그랬다. 그런 책이 수없이 많다. 시간을 내서 ‘다시’ 읽어야겠다.
함께 할 사람이 모집되지 않아 정말 서점 사장님과 나 이렇게 단둘이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저녁 외출이라 설레기도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후 새롭게 단장한 서점에 도착해 사장님이 준비해준 따뜻한 보이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독서모임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다. 독서 후 내가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구절을 함께 읽고 의견을 구했다. 같은 책을 읽고 함께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고, 서로 다른 삶도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다음 책을 선정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잘 권하는 성격이 아닌데 지인들에게 독서모임을 알리고 함께 하자고 권했다. 지인 2명, 지인의 지인 1명. 세 명이 함께 하고자 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블로그를 통해서도 신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함께 읽기로 정한 책을 오늘에야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읽기 만만치 않은 책이다. 단 1%만 이해하더라도 뭐 어떤가.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