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게 될까 두려워서 쓴다

by 김모씨

오전에 도서관에 다녀왔다. 아이의 하교시간까지 네 시간 남짓. 읽어야 할 것들만 겨우 읽고 집으로 향했다. 좀 누워서 쉬고 싶은데 엄마가 해 준 반찬과 과일을 잔뜩 들고서 아빠가 왔다. 거의 누운 자세로 소파에 걸터앉아 아빠의 일과와 건강을 묻고 뉴스를 보며 대화거리를 겨우겨우 짜냈다. 아빠가 떠난 후 영어 공부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아이 이야기를 조금 들어주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동안 영어공부를 마쳤다.

아이 게임시간, 나의 영어공부 시간 30분이 지나고 아이는 학원을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쉬고 싶지만 미용실 예약이 있다. 뿌리 염색은 새로 시작되는 독서모임을 앞두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외모 단장이다. 머리가 완성되길 기다리며 황정은의 <일기>를 읽었다. 하루에 한 권 읽기. 도대체 왜 시작했는지 몰라도 일 년은 지속하고 싶어서 고군분투 중이다.

염색을 마치고 반찬 가게에 들러 3개에 9,900원 하는 밑반찬을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아들은 학원에 돌아와 배가 고픈 상태다. 영어 영상을 틀어주고 쌀을 씻고 돈까스를 튀긴다. 아이 식판에 밥, 튀긴 돈까스, 아까 사온 반찬 3종을 덜어 식사준비를 마친다. 아이는 식탁에 앉아 홀로 식사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한다. 나는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아이의 말에 성의 없이 대꾸하며 황정은의 <일기>를 마저 읽는다.

황정은의 에세이를 읽다가 나는 멍해진다. 잠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던 자세 그대로 다른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경험을 한다. 연속해서 페이지의 한 쪽 끝을 접는다. 나는 황정은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한다. 나 또한 같은 경험이 있기에.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는. 아마도 영원히 기억될 일들이 세세하게 떠오른다. 30년이 지난 사건의 장소, 오고 갔던 대사와 분위기를 모조리 기억하는 그 일.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일들까지도 한꺼번에 떠오른다.


남은 일과가 있기에 그 기억에 오래 붙잡힐 수 없다. 아이 숙제를 봐주고,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반응해준다. 저녁 독서 시간이 되어 다시 책을 붙잡는다. 황정은의 책은 다 읽고 토지 16권을 이어서 읽는다. 독서 시간이 끝나고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오늘도 고생했을 남편과 대화를 간단히 나누고 아이와 함께 양치를 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마시고 자리에 눕는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토지를 이어 읽는다.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바로 자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글을 안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주 5일 글쓰기’를 실천 중인데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싶었다. 오늘 안 쓰면, 내일도 안 쓰고, 언제 글을 썼나 싶게 영원히 글은 안 쓰고 살게 될 것 같다. 글을 안 쓰고 사는 건 두렵다. 아직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쓰는 행위도 썩 마음에 든다. 반드시. 꼭 써야할 이야기도 있다.

이불을 박차고 나와 책상에 앉는다. 덮고 있던 이불을 털며 일어나는 순간 들었던 생각을 제목으로 적는다.

안 쓰게 될까 두려워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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