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니키 리가 되어주오

by 김모씨

지난 주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공공기관 일자리라 그런지 한 달 정도 근무하는 데 제출할 서류가 많았다. 면접날 겨울 정장을 꺼내 입으면서도 알바 면접인데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 생각은 틀렸다. 면접 장소에 도착하니 나 말고 세 명의 면접자가 더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기하던 지원자는 대학생으로 보였다. 나도 그 시절 면접 보러 다니며 입었던 하얀색 기본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차림이었다. 잠시 후 담당 직원이 오더니 이 중 한 명은 불합격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한다. 순식간 함께 동료가 될 지도 몰랐던 그들이 경쟁자가 변했다. 설마 내가 불합격자가 되는 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30분을 대기한 끝에 면접장으로 입장했다. 말 그대로 한 줄로 서서 커다란 방으로 나란히 입장을 했다. 드넓은 방 한쪽에 근엄한 인상의 면접관 세 명이 앉았다. 맞은편에 위치한 테이블에 한 명씩 착석하고 면접이 시작 되었다. 설마 그걸 묻지는 않겠지 했는데 첫 번째 질문은 자기소개였다. 내 인적 사항과 지원동기, 포부 등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적혀 있는데 굳이 말로 시키는 면접관이 얄궂게 느껴졌다. 그런 기본적인 답변을 준비 못한 나 자신은 더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첫 번째 순서가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의 답변을 참조해 즉석에서 나를 소개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첫 번째 지원자의 입에서 ‘저는 학창시절 12년 동안 지각, 결석 없이 개근을 하는 성실한...’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저런 이야기를 하다니. 그럼 나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으로 시작해야하나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누가 보아도 준비 안한데다 엄청 떨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면접을 치렀다. 나의 경쟁자들은 모두 달변가였다. 자신의 책임감과 성실함, 인간미를 막힘없이 풀어낸다. 나라도 그들을 뽑을 것 같다. 이미 면접장에서 ‘괜히 왔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일하기 싫었는데 오히려 잘 된 거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럼, 도대체 누가 떨어진거지?) 공무원 채용 건강 검진서를 제출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단기 알바도 쉬운 게 아닌 걸 다시 절감한다. 서류 준비부터 면접장에서 버벅대기에 건강검진까지. 일하기 전부터 과정에 지친다.


오후 두 시에서 다섯 시. 세 시간의 근무로 벌게 될 돈만 생각했다. 합격을 하고나서야 그 일의 성격과 아이를 혼자 두어야 하는 일 등이 고민되었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나는 지쳐있을 테고 약간의 돈과 책과 글을 쓰는 일상을 바꾸는 건 아닌가 싶었다.


채용 검진을 앞둔 오전 갑자기 ‘니키 리’가 떠올랐다. 뉴욕이 주목한 아티스트에서 요즘엔 배우 유태오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 건 언젠가 토크쇼에서 출연해 그녀가 한 발언 때문이었다. 그녀는 배우를 꿈꾸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무명생활이 길어지며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구직활동을 하려던 남편을 말렸던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어도 너의 소년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파도는 내가 맞으며 된다.”라던 그녀. 왜 그녀가 떠올랐을까? 유태오의 소년미와 같은 잠재력이 나에겐 없지만 남편이 나의 니키 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거다.

“너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그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 파도는 내가 맞으면 되니까.”라고 말하는 남편을 상상하며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얼른 건강검진 받고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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