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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외롭다

날 때렸던 엄마도 외로웠나요?

by 딱하루만
커버이미지 설명: 종이가 타들어가는 모습 (준수와 원이의 합작그림)



나와 같이 살고 있는 9살, 11살, 45살 사람들. 그 중에 11살 준수(가명)가 요즘 장난이 부쩍 심해졌다. 곧 있음 아이의 티를 확 벗고 고학년이 된다는 걸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준수는 세수하고 나와서 장난을 걸었다. 타깃은 나다. 그 아이 장난을 받아주고 나도 같이 장난을 치던 중에 준수가 있는 힘껏 내 허벅지를 내려쳤다. 그 때 영화 같은 순간이 펼쳐졌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봤던 순간이동을 했다. 내 허벅지에 전해졌던 그 통증은 기폭제가 되어 10살 아이가 거실에서 엄마에게 죽도록 맞고 있는 그 순간으로 데려다줬다.


32년 전 거실이었다.

그 아이는 외로웠다.

아프기도 했지만, 왜 엄마가 화풀이를 나에게 하며 때리는지 이유도 모른 채 맞으며 울고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고 울면서 매달려도 때리고 있는 손은 멈추질 않았고, 손에 들려있던 도구들은 하나씩 부러져 나갔다. 파리채, 옷걸이, 빗자루, 마지막엔 당구채를 들고 때리기 시작했다. 피가 터질 듯한 멍이 종아리에도 등에도 물들어갔고, 아파서 손으로 다리를 가리면 손 치우라고, 손 부러지니까 손치우라고 소리 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무서웠다. 10살 아이는 그 순간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결국 당구채가 부러지고 나서야 매질을 멈췄다. 엄마는 그제야 속이 후련해진 모양이었다. 엄마의 폭력이 끝난 후, 다리를 절며 혼자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소리 죽여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9살 원이(가명)가 그린 그림


차라리 누구에게 말이라도 하고 위로라도 받았으면, 10살이었던 아이는 30년을 넘게 혼자 모든 걸 감당하며 살려고 아등바등 하진 않았을 거다. 그 10살 아이에겐 5살짜리 어린 동생만 있었고, 집에 들어오면 tv와 신문에만 관심 있던 아빠가 있었을 뿐, 누구에게도 그 아프고 외로웠던 순간을 털어낼 곳이 없었다. 그 아픔과 외로움은 혼자만의 몫이었다.


5년 동안 명상을 하면서, 내면 아이 치유라는 걸 하면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 모든 순간이 버려지고 없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스티커만 떼어져서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남아있는 접착제처럼 가슴 속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붙어 있던 거다.


그렇게 32년 전, 10살 아이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죽여 울고 있던 나는, 이게 아닌데 싶었다. 지금의 난 40살이 넘었고, 9살, 11살, 45살 사람들과 한 집에 살고 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썼지만, 이미 순간 이동된 내 마음은 되돌리기 힘들었다. 현실로 돌아오는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 외로운 10살 아이가 아직 울고 있었지만, 엄마라서 아이들 앞에서 실컷 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얼굴에 범벅이 된 눈물을 대충 훔치고, 아이들에겐 우유 사러 나간다는 핑계를 대며, 패딩점퍼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돼버린 나에게 혼자 있을 곳은 없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어딜 가야하나 두리번거리다가 주차되어 있는 차가 눈에 띄었다. 그나마 차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서둘러 차문을 열고 들어가 열선을 켜고, 음악을 틀고, 소리 내서 울었다. 우는 소리가 음악소리에 묻히길 바라며. 소리 내서 우는 것도 못했던 난, 실컷 소리 내서 울다가, 우는 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32년 전 10살이었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니 잘못 아니야, 니 탓이 아니다. 울어도 돼. 아프다 얘기해도 돼.
무조건 잘못했다고 안 해도 돼. 괜찮아. 괜찮아.


그제야 10살이었던 내가 온전히 인정이 됐다.


어렸던 넌 억울했구나
외롭고 무서웠구나
큰소리 내서 엉엉 아이답게 울고 싶었구나


인정이 됐지만, 인정이 된 채로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외로웠던 10살 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두면 언젠가 또다시 나를 순간 이동시킬 거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얼른 버리고 싶었다. 눈을 감고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했다. 맞아서 외로웠고 엄마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받지 못해서 억울함에 쌓여있던 그때의 기억된 생각은 쉽게 버려질 수가 없었나 보다. 인정이 되니까 그제야 명상 방법대로 버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 버린 후, 홀가분했지만 몇 년 만에 우느라 맥이 빠진 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슬리퍼만 신고 나와서 제법 찬 바람이 발을 감쌌다. 머릿속에선 다행이라는 두 글자가 진하게 새겨졌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축축한 휴지는 버리면 된다. 버리지는 않고 억울하다고, 난 아직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이를 아득바득 물고 있어봐야 내 주머니에 있는 휴지는 그저 쓰레기일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그저 버려도 되는, 버리면 좋을, 아픔이지만..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인정이 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이제야 버려진 걸 보면.


울었고, 위로했고, 인정이 됐고, 버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32년 전에 5년 동안 나를 때린 엄마가 미워서 복수하겠다고 밤잠을 설치거나, 술을 먹으며 그 야밤에 전화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버리고 나니까 그 당시 엄마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얼만큼 외로웠는지,

얼만큼 힘들었는지,

엄마도 맞고 자랐는지, 내가 모르는 엄마만의 슬픔은 뭐였는지...

사람이 궁금해진 밤이었다.



엄마 그 때.. 엄마도 많이 외로웠나요?




이 순간에도 맞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이 순간에도 때리고 있을 부모들에게
무릎 꿇고 빕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도구를 이용한 폭력이든,
머리를 쥐어박는 딱밤이든,
손 들고 서있으라는 명령이든,

전부 폭력이며, 그건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닌
당신 자신을 때리고 있는 당신 마음이니까,
당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 살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도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만 때려주세요. 아이의 몸을, 당신의 마음을.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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