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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이유?

여자가 아닌 엄마라서

by 딱하루만
커버 이미지 설명: 원이(가명)가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린 그림



"와~ 돈이다!"

3만 원을 받아 든 아이는 그 돈을 지갑에 넣는다. 남편이 할머니 대신 전해준 용돈이다. 아이는 방 안에 지갑을 두고 나와서 나를 가만히 본다. 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이의 시선이 느껴져서 물었다.


"응? 준수야(가명) 왜?"


아이는 진지함이 묻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난, 가만히 있어도 돈이 생기는데, 엄마는 그렇게 일하면서도 돈이 안 생기네~ 이상해"


순간 뇌세포가 하나하나 녹는 느낌이 들어 적절한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녹아내리는 듯한 뇌세포 안에서 어떤 말을 골라도 눈물까지 동반할 것 같았다. 무보수로 일하는 주부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기도 했고, 일벌레였던 내가 육아를 선택했던 그 순간을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눈물까지 흘려가며 아이를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농담반 진단반 섞은 말을 하고 그 순간을 덮어 버렸다.


"엄만 이미 매일 받고 있잖아 돈으로 살 수 없는 거~ 네 뽀뽀~ 네 인사~ 니 마음"


아이는 적당히 만족할만한 답을 들었는지 진지함은 사라지고 눈이 작아지는 웃음을 보여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하던 일을 하며 녹아내린 뇌를 추스른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릇 사이로 결혼 초부터 준수(가명)를 낳은 후의 삶이 타임랩스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에 보이는 돈이 더 중요했으면 난 싱크대 앞에 서 있지 않았겠지. 직장을 옮길 때도 돈을 보고 옮기지는 않았으니까. 내 삶에서 돈이 기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부라는 업은 일정한 날에 정해진 돈을 받거나, 직급이 올라가거나 하는 따위의 보상이 없어서 스스로 내 일이 하찮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다.


아이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믿고 맡길만한 어린이집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죽도록 좋아하는 일을 포기했던 그 순간을 증오했고, 그 순간을 같이 고민하지 않고, 결혼 전처럼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남편을 질투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남 탓하는 사람의 본능을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온 집안에 퍼다 뿌렸다. 그렇게 집안엔 미움과 원망의 부스러기가 밟혔고, 내 머리 속엔 몰라도 되는 것들이 쌓여갔다. 일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집에 있으면서 알게 된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 살림을 하는 일이, 누군가의 보상이 없어도 그건 값진 일이라고 말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있지 않다.(심각한 저출산 사회인데도 말이다)

둘, 남편조차, 시집 사람들도, 운전하며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도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최하위층으로 취급한다. (차 뒷유리에 붙여진 스티커엔 '밥하고 나왔어요'라는 웃픈 얘기도 있듯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관념과 사회 분위기에 끌려가서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는 건 나 자신에게도 특히 아이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아이의 자존감은 엄마의 자존감과 별개의 것이 될 수가 없기에.


난 그 나쁜 일을 몇 년 동안이나 했다. 그러다 보니, 낮은 자존감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냈다. 삶의 낭떠러지 끝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죽거나, 사는 것 둘 중 하나였다.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간 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엄마였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 사람들의 마음이 천 프로쯤 이해되기도 했지만, 동참할 수는 없었다. 장녀여서일까?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는 책임감이 컸던 거 같다.


나는 살림을 하는 사람이고, 엄마다.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아무런 보상 없이 생명을 다룬다. 생명을 지켜내는 육아는 특권이고 권리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을 살려야 하는 사람이 자기를 먼저 살려놓지 않으면 누굴 살리겠나 싶었다. 젖을 먹으며, 이유식을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몸이 커져가는 아이를 보며 절박했다.


아이는 커가는데 변함없이 남편과 시집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똘똘 뭉쳐 내 속에 처박혀있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일 잘하며 잘 나간다고 콧대 세우던 여자가 아닌 준수(가명)와 원이(가명)의 엄마로서 나를 바꿔야겠단 생각이 축삭돌기마다 깊게 박히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하는 일을 해' 라고 도스토옙스키가 말한대로 그 때 생각하는 일을 시작했다.


사람이 두려웠던 나를 일으켜 세웠고,

우울했던 나를 다독거렸고,

지나간 상처를 붙들고 아파하며 몸만 어른이었던 나를 키워내야 아이들의 마음도 클 수 있기에, 뭐든 시작했었다. 그렇게 나를 키워내는 일에 온 마음을 다했다. 그 얘기들을 조금씩 풀어내려 한다.


나처럼 우울했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엄마가 되면 더 아파지니까, 예전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그 분들이 내 얘기에 희망을 느끼고,

아이와 매순간을 놓치지 않고,

행복한 삶을 가르쳐주러 온 아이에게 배우며, 온전히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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