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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아이라구요?

까다로운 아이? 취향이 확실한 아이!!

by 딱하루만

딸아이 옷 사러 갈 때쯤 되면 긴장된다. 두 세 시간은 기본으로 서 있을 각오하고 간다. 모든 옷 매장을 다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옷만 5~6개 정도의 옷을 입어보고 다시 매장으로 가서 입었던 옷을 재확인한 후 최종 결정을 한다.


원이가 옷 고르는 기준은 첫째 색깔이다. 밝은 색이어야 하고, 그때마다 본인 마음에 드는 무늬가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무늬는 매번 바뀐다. 날씨가 매일 바뀌듯이. 두 번째, 옷의 질감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었을 때 신축성이 있으며, 부드러운 질감을 좋아한다. 옷을 입어본 후 국민체조라도 하듯 팔도 위로 쭉 펴보고 뛸 때처럼 자세도 잡아보며 움직이는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사이즈가 손목 주름 부분까지 딱 맞게 와야만 입는다. 그래야 그림 그릴 때도, 글씨 쓸 때도 방해가 안된다고. 또한 소매에 조르개(일명 시보리)가 있으면 질감이 좋아도, 색깔이 마음에 들어도 거들떠도 안 본다.


그런 옷을 고르기가 어렵다. 질감도 좋고, 색깔이 마음에 들어도 조르개가 있으면 안 되고, 질감도 색깔도 마음에 들고 조르개도 없지만 사이즈가 안 맞는다. 사이즈도 맞고, 색깔도 질감도 괜찮지만 옷에 있는 무늬 안쪽이 까슬거리면 그것도 퇴짜다. 그럴 때마다 매장 주인은 늘 하는 두 가지 얘기가 있다. 아이가 참 까다롭다는 말과 나에게는 엄마가 맞냐고 묻는다.

맞다고 하면 으레껏 돌아오는 답변이 있다.


'이 집 엄마는 아이가 직접 옷을 고르게 두시네요.'

보통은 엄마가 아이 보고 고르라고 해도, 막상 아이가 골라오면 지난 번에 산거랑 같아서 안되고 색깔이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서 안 된다며 결국은 엄마가 고른 옷을 입히려 실랑이를 벌인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싫다고 떼쓰고 울거나, 기죽어서 마지못해 입는 모습이 다반사라고 했다.


매장 주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주변을 돌아보니, 주인 말이 맞다. 그 옷이 싫다고 엄마를 째려보는 아이와 기싸움하는 엄마, 대충 입으라고 옆에서 인상 쓰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처음부터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했다. 까다롭다고 말해주는 매장 주인과 한 패가 돼서 딸아이의 취향을 거부했다. 매장 주인의 그 말은 내 힘듦을 알아주는 말인양 착각했다. 나도 내 맘대로 아이 옷을 고르고 입히고 싶었다. 상의와 하의 색깔이 어울리지 않거나, 재질이 다르거나, 심지어 한여름에 목도리를 두르고 나가는 아이의 옷 입는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 취향이 뭔지 잘 모르는 채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했다. 우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좁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느라 땀 나서 머리카락 다섯 가닥쯤 이마에 붙인 채로 나온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옷 사줘서 고맙다며 내게 준 선물


아이 옷 매장의 탈의실은 옷을 보관해놓는 창고 같았고, 비좁다. 없는 곳도 있다. 그런 곳에서는 옷을 갈아입기 싫을 만큼 불편할 것 같았다.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 일은 어른도 쉽지 않다. 입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싫었을 거다. 그런 자신의 취향을 까다롭다는 말 한마디로 내팽개치는 매장 주인의 마음이 거슬렸을 것 같다. 거기에 한몫 더해 엄마까지 자기편이 아니라면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고 나니, 난 더 이상 매장 주인 편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까다로운 취향으로 걸려있는 옷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 어떻게 할까?

까다롭다고 비난할까?

한숨 쉬며 눈치 줄까?

자신의 다리가 아프다며 나에게 핀잔을 줄까?

아마, 아니겠지. 진짜 사랑한다면 나의 취향을 존중해줬을 거다. 까다롭다는 마음도 없이. 정말 안 어울리는 옷을 고를 때만 살짝 조언을 해주면서.


아이 편에 서서 아이의 마음을 더 존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힘들더라도, 최소한 너에게 어울리는 옷이 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이 어울리는지 자신의 취향도 모르고 남의 기준에 맞춰 옷을 고르는 일이 없으려면 딸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얼어 죽은 고무나무잎처럼 쉽게 떼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었지만, 아이의 취향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너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는 마음, 너의 취향은 까다롭다는 생각을 비워내야 가능했다. 미직지근한 커피가 들어있는 잔에 따끈한 국화차를 담으려면 일단 비워내야 하듯이.


원이가 옷을 고르고 있을 때 난 서서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마음빼기를 하며 그 시간을 보낸다.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을 명상 방법대로 버리며 서 있다.


그만 좀 고르지
원이야 언제까지 고를래?
원아 지금 고른 거 괜찮아 보이는데? 그냥 그걸로 하지
이젠 제발 좀 가자
내가 왜 이러고 서있는지 모르겠네
저녁은 뭐해먹지?
난 언제까지 너의 까다로움을 견뎌야 하냐고~


머릿속에서 이런 수만 가지 생각들이 떼로 밀려든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아이에게 토해내지 않고 명상하면서 아이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내 안은 점점 비워지고 아이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이 된다. 아이는 자기 마음에 딱 맞는 옷을 고르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도 기다리는 내 입장을 생각해줬고 우린 그 순간 서로의 마음을 바라봤다.


"엄마~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미안~ 나 마음에 드는 옷 골랐어.고마워"

"그래? 우리 계산 얼른 하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앉아서 쉬었다 가자 어때?"

"좋아~ 나도 옷 입어보느라 힘들었거든"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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