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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모습이라면?

아이를 보며 느끼다

by 딱하루만

오전 6시 30분.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다. 아이들의 설렘이 시작될 하루를 내가 먼저 열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이다. (예전엔 '소풍'이었는데..요즘엔 이것도 학습이여야 하나싶다.)




바스삭~ 김을 반으로 잘라놓는다. 압력밥솥 뚜껑을 열었다. 하얗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는 밥을 매끈한 믹싱볼에 담는다. 소금, 참기름, 식초, 설탕, 깨소금을 넣고 자기들끼리 붙어있는 밥 무더기를 떼어놓으며 서로 사이좋게 양념들을 나눠가질 수 있게 주걱으로 교통정리를 한다. 뜨거워진 프라이팬에 길게 잘라놓은 햄을 사정없이 넣어서 지글지글 구워버리고, 희여 멀건한 단무지에선 물기를 뺏어놓는다. 채 썰어 놓은 당근과 우엉은 조용히 옆에서 입 다물고 있다. 김을 펴고 그 안에 준비해놓은 것들을 차례차례 올려놓는다. 순서는 내가 정한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꼭꼭 눌러 담고 둘둘 말아놓은 후 마지막엔 김밥말이로 꽉 조여준다. 절대 김밥 안에서 너희들은 나올 수 없다는 듯 꼭 조여놓는다. 그렇게 김밥이 하나 둘 셋 늘어간다.


까만 김밥줄이 7개쯤 되었을 때 하나씩 도마에 올렸다. 참기름을 발라 반들반들해진 김밥에 칼을 댄다.

그 칼로 아이들 입에 들어가서 먹히기 좋을 크기로 썰어야 한다. 그렇다고 칼에 힘을 줘서 시커멓게 보이는 김밥을 막 대하진 않는다. 그렇게 하면 김밥 안에 있는 것들이 반작용 법칙인지 뭔지 썰리지는 않고 다 튀어나올 기세를 보이니까. 칼을 대고 아이 달래듯 살살 밀면서 칼집을 쓱 내고, 다시 힘을 빼고 칼을 뒤로 빼면서 김밥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렇게 깊게 들어간 후, 앞으로 칼을 죽 밀면서 힘을 주면 김밥은 힘을 쭉 빼고 툭 떨어뜨린다. 칼이 앞으로, 뒤로, 또다시 앞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김밥은 아이들 입에 들어가 먹기 좋은 크기로 딱 맞게 썰려줬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동강동강 내주고 도시락통으로 들어간다.



원이(가명)가 그린 어느 맑은 날


도시락 준비가 다 되어갈 즈음, 알람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 부스럭거리며 몸을 돌리는 소리, 하품하는 소리는 한데 섞인 김밥처럼 맛있게 들린다.


3분의 1쯤 보이는 말간 눈동자로 나와 눈을 맞추며 설레는 하루를 확인하는 아이들. 아침을 먹고 소풍가방을 싸고 설렘을 한가득 메고는 운동화를 신는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를 본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하고 싶지 않은 생각하나가 나에게 엉겨붙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내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인사하며 흔드는 손은 더없이 귀여웠고, '갔다 올게'라는 목소리를 놓칠까 싶어 귀를 활짝 열어젖혔다. 그렇게 아이는 문을 닫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몰라서 그 순간을 놓지 못해 두려워하고 우울해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게 바로 놓아준다.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기에 그 순간에 충실한다. 그 순간이 행복이란 단어로 표현될 수 있지만, 붙들어 매 놓을 순 없기에 순간은 얼른 놔주고, 김밥 싸느라 여기저기 정신없어진 부엌을 정리하러 간다. 그렇게 또 다른 순간에 충실하러 간다.



아이가 그림 그리고 엄마는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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