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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Jan 10. 2019

부모에게 속지 마!  

4살, 이름 모를 아기에게 쓰는 편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4살 된 너를 봤어. 넌 아빠를 웃겨주려고 웃긴 표정을 했는데, 그런 너를 보며 이상한 표정짓지 말라고 화를 내는 네 아빠를 보고, 좀 마음이 서늘했어. 슬퍼하고 무서워하는 네 눈빛이 내내 마음에 걸렸거든. 주제넘게 그 순간 내가 나설 순 없었어. 그래서 이렇게 이름은 모르지만, 노란 털모자 쓴 4살 너에게 편지 쓰고 있어. 넌 읽지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너에게 어떻게든 전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노란 털모자 아가야~

부모님(주양육자)이 너한테 훈육한다고 인상을 잔뜩 쓰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너를 노려보며, 평상시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확성기를 입에 댄 것처럼 말하면 넌 속상하겠지. 무섭기도 할 거야. 그런데 이런 부모한테 속지도 말고 끌려가지도 마.     


무슨 소리냐고?     


부모는 니 잘못이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사실 니 잘못이 아니야. 그 부모님은 4살짜리 자기 자신한테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있는 거야. 네가 아니라.  


너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본 것뿐이고, 4살이었을 때 자신이 들었던 말을 너한테 쏟아내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니 잘못이라는 부모 말에 속지 마. 속으면 어떻게 되냐고? 넌 계속 죄책감, 자학, 자책 같은걸 집어먹으며 살게 돼.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만 봐도 나를 혼낼 것 같은 생각에 뭘 봐? 라며 먼저 시비 걸거나, 시선을 못 맞추고 다른 곳을 쳐다보게 돼.


학교 들어가면 더 예민해지지. 친구를 실내화 주머니로 툭툭 건드리고 싶은 마음도 커지게 되고. 길가다 중학생 누나들에게 들었던 욕을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될 거야. 친구들은 툭툭 치거나, 욕하는 걸 싫어하지만 넌 멈추기가 쉽지 않게 돼. 부정적인 반응도 넌 관심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 사실은 너도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은 건데 방법을 모르는 거지.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잘못된 일을 봐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당당하게 말 할 수가 없어. '내가 말하면 또 혼나겠지' 라는 생각의 길이 니 머릿속에 만들어지거든.

      

그럼 그렇게 안 살려면 어떻게 하냐고? 니 잘못은 아니라는걸 알아두렴. 그리고 부모가 화를 낼 때, 눈을 가만히 바라봐 줘. 무서울 테지만 그래도 용기 내서 부모를 바라봐줘. 잘 안된다고? 그럼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이라고 생각해볼래? 바라보고 이렇게 말해줘.     


부모랑 똑같이 큰소리 말고, 무섭겠지만 한 번만 꼭 참고, 평상시 네 목소리로 천. 천. 히. 물어봐줘

     

엄마(아빠) 힘들어?  또는
아빠(엄마) 화내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줘요. 지금 난 너무 무서워요

라고 해볼래?      

그러면, 그 순간 아빠(엄마)는 머릿속에서 파바박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알게 될 거야.

'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습관처럼 화를 내고 있구나'

그리고 너의 감정도 알게 돼. 아마 너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할 거야.


왜냐면 네가 잘못한 건 없거든. 4살짜리는 잘못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그저 밥알이 귀여워서 쪼르륵 세워놓으면 어떨까 상상하며 식탁 주변에 이쁘게 붙여놓거나, 설탕이 궁금해서 바닥에 쫙 뿌려놓고 센드 페인팅하듯 그림을 그리려는 게 그게 뭐 잘못인가~ 그치? 그건 잘못이 아니라, 네가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일 뿐이야. 넌 잘못이 없단다. 노란 털모자 아가야~


It's not your fault!   

- '굿 윌 헌팅' 영화 중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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