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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Dec 04. 2018

엄마, 있잖아~

아이들을 통해 배워가는 삶

서로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대신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장실에서 복사기 앞에서 만날 때마다 스몰토크라도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아는 척하는 것. 이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손화신 저- <나를 지키는 말 88>  중

소통은 별스러운게 아니었다.


'엄마, 오늘 민지가 얘기해줬는데 걔네 엄마랑 옷을 같이 입는대. 민지는 나보다 크구, 엄마는 많이 말랐나 봐'

학교에서 돌아온 원이가 올망졸망한 눈으로 대단한 얘길 해준다.


'엄마, 이것 봐 집에 오면서 발견했는데 진짜 이쁘지? 빠알간 색이랑 분홍색이랑, 다홍색이 섞였어. 엄마 선물이야, 엄마 주려고 갖고 왔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다이아몬드를 주웠는 줄 알았다.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소중하게 들고 온 나뭇잎 하나를 내게 준다.


아이들을 보면서 소통이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그저 내 얘길 이 사람한테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온몸으로 듣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자살도 막을 수 있다는 진심도, 경청도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만 풀 수 있는 암호해독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원이는 엄마가 온전히 자신의 말을 보고 들어줄 때까지 벽에 붙은 껌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진심을 배우게 됐다.


'엄마~ 있잖아'가 신호다. 설렘과 들뜸이 섞인 신호음이 들리면, 훈련된 강아지처럼 설거지를 멈추고 고무장갑을 빼고 아이를 보며 주방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다. 너만 보인다는 눈으로 원이를 바라본다. 차가워진 아이의 손을 잡고 시간이 멈춘 듯 바라보면 원이는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다. 실컷.

안 그러면 '엄마~ 있잖아'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이 순간이 지나서 아이의 말을 못 듣게 된다는 가정이라도 하고 들으면 자연스레 원이의 말에 쏙 빠진다. 그 아이의 세계가 궁금해지더라. 아 진짜? 정말? 아구야.. 어쩐대니? 유진이는 괜찮대? 추임새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그 순간은 '경청'이 됐다.


이야기의 경중은 필요 없다. 이 말은 중요한 말이고, 그 말은 쓸데없는 말이며, 저런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고, 뭐 그런 게 없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이 아닌 이상, 얘기하는데 점검하며 가려낼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머리에서 마음에서 생겨나는 대로 말한다. 어떨 땐 전기신호가 번쩍거리는 아이의 뇌 속을 훤히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잡담은 그저 말의 껍데기에 불과하고, 쓸데없는 시간낭비이며, 그럴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읽거나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10살짜리 아이보다 소통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아이는 하루 동안 담아놓았던 자기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보고 있는 나는, 여기 살아 있다는 것, 나도 들을 수 있다는 것. 아직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말해준다. 내 존재를 끊임없이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 스몰토크였다. 아이가 나를 존중하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지만, 결과는 그렇게 만드는 원이의 잡담 능력 레벨을 훔치고 싶다. 딸아이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현관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아~ 인환이가 있잖아.. '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준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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