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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Oct 30. 2018

둘째가 더 이뻐 보이나요? 2

첫째와 둘째에 대한 마음의 균형이 같아지는 날

1편에 이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거창하게 마음은 먹었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싶었다.


1. 첫째를 많이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횟수를 의식적으로 늘리고

2. 둘째가 잘 때 힘들다고 쉬기보단 첫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 주말엔 둘째를 아빠에게 맡겼다. 첫째와 '둘만의 시간' 보내기 위해.

4. 첫째와 둘째라는 단어를 내 안에서 지워버려야겠다. 이유는 지극히 내 입장에서 첫째 둘째지, 아이들 입장에선 둘 다 이 세상에 '첫 아이' 들이니까. 첫째가 상대적으로 큰아이라는 누명은 부모가 만들어낸 거니까.


두 살 차이 나는 아기들을 키우다보면 내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길 만큼 여유가 없다. 무언가 기억할 여유도 없어진다. 


휴대폰 알람을 이용했다. 아침 7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30분 간격으로 맞췄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첫째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기 위해서.

 

한 달가량 2,3,4번은 거의 지켜냈다. 1번은 쉽지 않았다. 제일 쉬워 보이는 1번은, 일주일도 안돼서 결국 알람 울리는 휴대폰을 째려보며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껐다. 첫째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 아닌 죄책감이었다. 근데 표현은 뽀뽀였으니. 억지로 참으며 했던거다.행동이 마음을 바꾸진 못했다. 결국 알람을 전부 삭제해버렸다.

삭제하면서 느낀 그 좌절감이란...


이유식 밥알이 옷에 묻어 굳은 채로 또 다른 방법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우회도로가 없는 고속도로에 올라탄 것처럼 멈출 수 없었다.


육아 관련 책이란 책은 눈이 벌게질 때까지 읽어댔고, 관련 논문도 찾아서 머리 속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엄마학교 강연에 가서 아이에게 공감해주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실습도 했다. 마음 그릇을 키우기 위해 각종 심리 관련 치료도 했다. 하지만 배움은 현장까지 이어지지가 않았다.


책은 덮으면 끝이었고, 강연에서 실습하고 배운 건 머리에 딱 붙어 내려오질 않았다. 막상 첫째를 보면 행동과 표정은 예전처럼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둘째는 이뻤고, 두 살 차이 나는 첫째품을 수가 없었다. 몇 달 동안 노력한 결과없었다.



이대로 그만해야 할까?

남들 말처럼 첫째는 돈으로 키운다 생각하고 놔버려야 할까?


그러기엔 첫째 아이의 공허한 마음이 안쓰러웠다. 나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둘째의 울음소리를 따라 하며 아기흉내 내는 준수의 몸부림이 가슴 속에 칼처럼 박혔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는데 결과가 없다는 사실은, 가슴에 꽂힌 칼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국회에 가서 일인시위라도 하고 싶었다. 방법 좀 만들어달라고. '첫째와 둘째에 대한 마음이 같아지는 방법' 말이다.


어떤 결과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김00으로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그러다 공사 중인 어느 기업 간판을 봤다. 기업은 상호명을 바꾸면 이미지가 달라진다. 이미지 세탁하는 기업을 보고 차라리 저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내 간판은 이름이니까 그거라도. 개명절차를 차근차근 밟았고, 결국 바꿨다.


당장 해리포터의 마법처럼 어떤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그즈음 시작했던 마음빼기하는 명상을 하면서 마음에 간극이 생긴 듯했다. 그 틈 사이로 살아온 하루하루를 영화 보듯 봤다.


육아하면서 체력이 소진되어 오는 우울감, 무기력해진 마음으로 억지로 읽어줬던 동화책, 상대적으로 어린 둘째를 지키려는 무의식의 본능, 첫째 아이를 귀찮아하는 표정,

그로 인한 죄책감에 젖은 마음,

나는 이렇게 집에서 애나 키울 사람이 아니라는 우월감, 난 일상이 바뀌고 몸도 변했는데 남편은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한 질투,

부모에게 차별받았던 억울함,

모든 걸 남편 탓하며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


첫째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었으면 그런 내 모습을 볼 용기가 났을까 싶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굳이 내지 않았을 담력이었다. 어쩌면 배우들도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할 때 이런 용기가 필요했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내 속좁은 마음 바닥의 민낯이었다.


명상하며 그런 나를 마주하는 힘은 내가 만들어놓은 '나만의 세상'에 조금씩 금이 가게 했다.

 

아오야마가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왼쪽).  누나가 만들어낸 세상이 부서지기 직전 모습(오른쪽)  <펭귄 하이웨이>   중에서   


육아하는 동안, 마음을 빼기했던 그 한 시간, 한시간이 소원돌탑처럼 쌓였다. 6달쯤 되던 날, 첫째 아이의 살내음이 더 이상 비리지 않았다. 첫째 아이를 꼭 안고 둘째 아이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기뻤다. 첫째를 처음 만났던 날보다 더 설렜다.


그동안 둘째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던 첫째의 이쁨 구름이 걷히고 달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알람이 울려야만 억지로 안아줬던 첫째를 그 전처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었다. 명상을 하고 돌아온 밤이었다. 책 읽어주고 아기들과 누웠다. 둘째는 그새 잠들었고, 첫째는 잠이 안 오는지 손발을 꼼질꼼질 한다.


옆에 있던 준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움직거린다.


"엄마"

"응?"

"엄마가 예전엔 원이만 이뻐했는데 지금은 엄마가 나도 이뻐해 주는 것 같아"

"아~ 그래? 얼마큼 이뻐하는 것 같아?"


성대근육이 조여왔다. 조심스레 물었다. 학생 때 성적표 받기 직전의 떨림보다 더했다.


"원이랑 나랑 똑같이 많이 많이"

.....


코 끝에 전기를 맞은 듯했다.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식도로 밀어 넣고 첫째에게 물었다.


"준수야, 원이만 이뻐했을 때, 넌 기분이 어땠어?"

"속상했어. 엄마가 나 버릴까 봐 무서웠어. 그리고 뭐든 잘하고 싶었어"

"그랬구나"

"근데 이젠 잘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

"준수야, 준수 힘들게 해서 미안했어. 그런 엄마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이제 겨우 5년짜리 엄마라서 미안해. 엄마가 얼른얼른 클게"


그렇게 첫째 아이는 내 품에 쏙 파고들어 안겼다. 둘째가 태어난 지 3년 만에 그토록 원했던 대물림을 끊게  순간이었다.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고민을 듣고 제 경험을 나누고자 썼습니다.


https://brunch.co.kr/@for3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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