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가 싸우는 건 당연하다

싸워도 돼. 괜찮아!!

by 딱하루만

남편이 열 받았다.

원이가 '참견하지 말라고!'라는 말 때문에.


준수랑 원이가 싸웠고, 한창 싸우는 중에 남편이 그 사이를 쪼개고 들어갔다.

'싸우지 마! 버럭 소리 지르며 준수는 이렇게 해서 잘못했고,

원이는 이게 잘못이야. 그러니까 둘 다 잘못한 거니까 이제 그만 싸워!'라고 해버렸다.


원이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판결이 억울했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에 화가 나서 울먹거리며 참견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원이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였고, 더 화를 냈다.


난 그저 시간이 좀 흐르기만을 바라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서로 불붙은 순간엔 그 어떤 말도 흔적 없이 타버리니까. 아예 구경만 하는 편을 택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냥 넘어갈 순 없고, 말은 해야 했다. 내 생각전달해야 했다. 이유는 '왜 엄마가 돼서 애들 싸우는데 그냥 두냐' 는 남편의 뭉툭한 질문에 답을 해야 했기에.



두 아이가 상의해서 만든 '책 사이로 빠져 나가기' 게임


대답1.

엄마인 나는 싸움을 말려야 되는 사람이 아니다.


애들이 싸우면 그냥 둔다. 두 아이가 낄낄거리며 책으로 미로를 만들고, 이불과 의자로 텐트 치기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 때도 그냥 두는 것처럼. 싸울 때도 내 할 일 하며 구경만 한다. 왜냐고? 싸우는 건 당연한 거니까!

서로의 생각이 다른데 그걸 인정 못하면 부딪히는 건 당연한 거다. 부딪혀봐야 '아~ 저 사람은 그렇구나'를 알게 되는 절호의 기회다. 남매라 해서 서로 잘 알 거라는 건 착각이다. 가장 서로를 모르는 사이가 가족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오죽하면 가족은 가좆이란 단어까지 등장했을까 싶다.



대답2.

가족 내에서 싸우는 방법을 배우고, 화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거든. 학교? 학교에선 싸우지 말라고 하지. 잘 싸우라는 말은 안 한다. 우리 세대도 부모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컸기 때문에 잘 싸우지 못해서 혹은 무조건 안 싸우고 꼭꼭 묻어둬서 생긴 부작용이 많잖아. 40살이 넘은 우리는, 부모가 된 우리는, 이제 그 말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대답3.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하는 관계에선 더더욱 잘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물론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 싸우지 않고 의견을 존중하며 불필요한 감정을 사용하지 않는게 가장 좋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싸운 후가 중요하고, 잘 싸우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


특히나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하는 관계에선 더더욱 잘 싸워야 한다. 그래야 두 아이가 밖에서도 친구들, 형 또는 언니들과 잘 싸울 수 있다. 잘 싸워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잘 싸운다는 건,

이겨먹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을 던지지 않고 비아냥이나 냉소를 섞지 말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상대의 생각을 듣고 내 얘기를 상대가 받아들일 만큼만 솔직히 말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말로써 풀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서로를 알아가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해야 길게 같이 살지, 안 그러면 어떻게 오랫동안 얼굴을 보나.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



대답4.

남매든 형제든 부모의 사랑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걸 인정하자.


강아지들이 서로 이빨로 귀를 물고 앞발로 툭툭 건드리고 이 정도 세기로 물면 얘가 으르렁 거리네~ 라는 걸 알고난 다음은 방금 전보다 약하게 물면서 논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노는 모습만 봐도 둘 사이의 언어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며 서로 알아간다.

형제나 남매도 그렇게 강아지가 뒤엉켜 놀듯이 좀 투닥거리며 싸우는 걸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봐주면 어떨까? 떄리고 욕하는 것도 아닌데.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것,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가려내는 것, 싸우더라도 감정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센 불에 음식이 타듯, 서로의 관계가 까맣게 변할 수 있다는 걸 가족 안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싸우지 않는 관계가 그리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익은 삼겹살엔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적당한 온도에서 좀 익어야지.


무조건 싸우지 않는 관계는 어느 한 쪽이든, 양쪽 다이든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아서' 화병이 생기거나, 암이 생기지 않을까? 참았던 화는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무언가에게 반드시 전가된다. 그게 고객센터 상담원이 될 수도 있고, 준수보다 어린 1학년 동생이 될 수도 있으며 움츠리고 지나가는 길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품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화풀이'로
이를 당한 사람은 또다른 약자에게 감정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정신과학교실 하지현 교수-


그래서 엄마인 내 역할은

자신을 돌아보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렇다고 엄마인 내가 아이들 싸움을 무조건 '강 건너 불구경'만 하지 않는다.

싸우고 난 후엔 그 당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 마음을 빼기하기. 그래야 같은 문제로 싸우지 않게 되니까. 같은 문제로 싸우지 않아야 그 관계는 조금씩 성장하니까. 그 분위기만 만들어주는 정도가 엄마인 내 역할이다.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지 않기


두 아이 싸움에 함부로 껴들지 않는다. 당신과 내 싸움에 부모든 친구든 끼어들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걸 당신도 알잖아. 싸움이 더 커지고 번지기만 하지. 해결이 되나. 아이들 봐봐. 지금은 서로 사과하고 있잖아. 싸우고 난 후에 서로 돌아볼 분위기만 잡아줘도, 싸웠던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각자 확인하고 서로 사과한다. 어른인 우리도 이렇게 제대로 못하잖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운 모습, 5살 차이 나는 동생과 싸운 순간들, 남편과 신혼여행 때부터 일주일에 7번을 싸웠던 하루하루, 2살 터울인 나의 아이들이 싸우는 일상을, 하얀 종이 위에 죽 늘어놓고 고민했던 것이 내 안에 새겨진 모양이었다.


마음에 새겨진 말들이 줄줄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끊김 없이 튀어나오는 문장을 남편은 다 듣고 나더니, 그렇게 오래 고민한 줄 몰랐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맨스플레인'을 해대는 남편은 웬일인지 조용하다. 그 틈을 타서 남편에게 제안했다. 우리도 잘 싸우자고. 잘 싸우고 난 후 어떻게 하는지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크니까.



잘 싸우는 방법 만들기

최소한 집안 공기를 무서움으로 얼게 만드는 부모는 되지 말자고. 그래서 잘 싸우는 방법을 우리끼리 만들었다. 서로 A4 용지 위에 썼다. 싫어하는 말,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그러기 위해 할 규칙을 각자 적고 나서 바꿔 봤다. 바꿔보며 각 항목을 보고 변명이든 할 말이든 있으면 했다. 그리고 조율하며 최종본을 완성했다. 두장의 A4용지는 한 장으로 압축했고, 다시 확인하며 사인했다.


1. 욕은 하지 말기 (에이~ 씨도 욕에 포함)


2. 야, 너.라는 단어는 욕만큼 안 좋은 단어니까 금지.


3. 호칭 정하기(남편은 달링. 나는 자기.라는 호칭 쓰기)


4. 이 싸움은 담백한 언쟁이 아닌, 감정싸움이라는 생각이 드는 쪽이 '그만하자'는 신호 보내기! 이 때는

싸움을 일시 정지하고 시간 갖기.


5. 싸우고 난 후 또는 휴전 시간엔 반드시 돌아보고 마음빼기 명상하기


6. 돌아본 마음을 서로 표현하기. 말로든, 돈으로든.


이렇게 원칙을 정했고, 아직까진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6개월 뒤엔 6가지 항목이 2~3개로 줄었으면 하는 새해 소망을 가져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