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12년 됐다. 아이를 키워보니 내가 들인 수고와 돈과 시간을 나중에 아이에게 효도라는 명목 하에 뭐라도 돌려받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자식의 명의를 빌려 사채까지 쓰는 부모 또한 되고 싶지 않다. 이유는 아기에게 온전한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에.
'사진' 폴더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아이들이 자라온 흔적을 정리하다가 '두 아이에게 받은 게 이렇게나 많구나'를 느꼈다. 늘 줘야만 했던, 아니 주기만 했다고 착각했던 시간 속에 있을 땐 몰랐다.
기침하는 준수(가명)를 위해 습도 60%를 유지하고, 건조해지면 피부에 돌기가 일어나는 원이에게 로션을 바르고, 당근을 다지며 이유식을 만들고, 모유를 주고, 입히고 씻겼던 시간들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정작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선물이 보였다. '아이는 세 살 전에 이미 효도를 다 한다'는 혹자의 말이 떠오르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효도 1.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온 몸으로 웃어준다
머리가 떡지고 눈곱이 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무 조건도 편견도 없이 반겨준 사람이 있었을까?
생후 2개월 된 아기는 주먹을 꼭 쥐고, 두 발은 바둥거리며 입은 뭐라 말하고 싶은지 움직 움직 한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 세상이 엄마 밖에 없는 듯 살갗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웃어준다. 기저귀가 축축하든 말든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뭐든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로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품에 안고 모유 먹일 때,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작고 포동한 손을 엄마 젖가슴 위에 올려놓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젖을 먹다가 '아고 우리 아기 잘 먹네~'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모유를 먹다말고 고개를 돌려 바로 엄마를 바라본다.
진짜 빛나게 웃는다. 입 안에 있던 모유를 마저 삼키지 않은 채 웃느라 젖이 흘러 내복을 적셔도, 그 딴 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냥 엄마 목소리에 발을 쭉쭉 뻗으며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내준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한테서도 보지 못한 미소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아낌없이 보여줬다.
효도 2. 엄마를 조건없이 인정해준다. 잘 하든 못 하든!
아기들은 엄마에게 안기고 엄마가 곁에 있을 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탐구한다.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것처럼 책장도 올라가 보려 낑낑대고, 엄마만 옆에 있으면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지 식탁 위에 올라가 두 팔을 새처럼 벌리고 뛰어내리기도 한다. 내가 뭐라고.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뭐든 다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아긴 엄마를 그런 존재로 믿고 안기고, 뛴다. 아기 곁에 있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든든한 토르 같은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 엄마가 주름이 졌든, 머리를 못 감아서 떡졌든, 연봉이 얼마짜리 엄마든 아무 조건이 없다. 그저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엄마를 인정해준다.
효도3. 엄마의 기분을 가장 잘 알아준다. 아기의 공감 능력치는 만렙이다.
엄마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엄마가 슬퍼질 땐 같은 얼굴로 곁에 와서 자신의 살을 맞대며 기댄다. 내가 웃으면 아기 안에는 자가발전소가 있나 싶을 만큼 나보다 더 밝게 웃어준다. 엄마가 기침하면 괜찮냐고 물어보며 기침이 나오는 엄마 입에 대고 '호오~~'를 아주 열심히 해준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고, 나보다 많이 기뻐해 주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감정보다 두 배 더 많이 보여준다. 아기의 그런 사랑을 받으면 내 안에 넘쳐서 눈물이 날 때도 있고, 넘쳐서 또다시 아기에게 퍼줄 때도 있고, 넘친 그 마음이 내 안에 다시 스며들어와 상처 난 곳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커버그림 원본: 원이그림
그랬던 아기가 커서 초등학생이 됐다. 학교에서 효도를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신발정리부터 하는 원이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쳐줄 수밖에 없음을 얘기해주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난 이미 너한테 효도를 다 받았다고 고백했다. 증거물도 보여줬다. 원이가 아기였을 때 담아둔 사진과 동영상들. 아이는 뿌듯한 듯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효도할거야! 어깨 주물러 줄게 앉아봐 엄마!"
아이의 손힘을 느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동안, 아이들이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할 일은, 독립해서 살아갈 힘을 열심히 키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성인이 되면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게.
그 후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멋지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때 돼서 넌 너로, 난 나로 부모와 자식이 아닌, 어른 대 어른으로 하는 대화는 또 얼마나 멋질까.
성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식이 아닌 진짜 어른으로,
성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가 아닌 진짜 어른으로
너와 내가 그렇게 만난다면 참 멋질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