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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pr 30. 2024

자존심 다 버리고, RETRY!

엔플라잉, 〈폭망〉







후회는 안 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절대로 안 할 수는 없는 그런 것이다. 후회도 두 종류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한탄하게 되는 회한이 되거나, 어떻게든 울며불며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 애써 볼 수 있고, 돌이킬 가능성이 남아 있거나. 후자의 경우 후회를 청산할 수야 있겠지만, 돌이키는 과정이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후회되는 그 일만 아니었다면 훨씬 쉽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해낼 수 있었던 일이 아주 어려워지는 순간. 엔플라잉의 〈폭망〉은 그 후회되는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그러나 이제 돌이키기엔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찰나에 부르는 노래다. 다 끝난 줄 알았던 네게 남은 미련, 그리고 다시 마주친 너. 들들 끓는 마음, 그리하여 아주, 폭망(爆亡)한 상황!





N.Flying

〈폭망〉(2022, 8th Mini Album 'Dearest')











망했다 그동안 꽤 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버린 거야
끊긴 회로에 불이 피고 있어
곧 폭발함 이젠 나도 몰라

나 얼마 전에 헤어졌어
꽤 유명한 집돌이고
전화도 잘 안 받고 싶어
그래서 친구 하나 없어
큰맘 먹고 나가 볼까 했어
별 기대 없이
마치 무슨 짠 듯이 짜여진 테이블처럼
내 앞에 네가 있었던 거야

그렇게 꾹 꾹 꾹 난 말을 아끼며
혹시라도 마주칠까 봐서
눈만 동동 굴리며
닮은 게 많지만 확신하지는 않을래
그 순간 포개진 두 손
왠지 99 Problems Go get it

망했다 그동안 꽤 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버린 거야
끊긴 회로에 불이 피고 있어
곧 폭발함 이젠 나도 몰라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어떻게 우리 둘 사이 낭만이 있을까
그럼 안 되는 거잖아 나쁜 놈이잖아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잖아
그냥 핑계였던 거야 나쁜 놈 잊어라

그렇게 꾹 꾹 꾹 난 말을 아끼며
혹시라도 마주칠까 봐서
눈만 동동 굴리며
닮은 게 많지만 확신하지는 않을래
그 순간 포개진 두 손
왠지 99 Problems Go get it

망했다 그동안 꽤 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버린 거야
끊긴 회로에 불이 피고 있어
곧 폭발함 이젠 나도 몰라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있는 힘껏 날 욕해 난 벌 받을 거야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아질 거야
똑같은 놈 만나서 너도 똑같이 당해 봐
내 기분을 망치지 말아 줘
Don't mess up

망했다 그동안 꽤 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버린 거야
끊긴 회로에 불이 피고 있어
곧 폭발함 이젠 나도 몰라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폭망 폭망 널 좋아하게 됐어




'나'와 '너'는 아무래도 헤어진 사이인 것 같다. 어지간한 첫사랑이면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망했다!'부터 튀어나오진 않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헉, 진짜로, 등등의 말들을 다 제끼고 당당히 첫 가사를 차지한 '망했다'는 '너'가 아무래도 '나'와 이미 한 번 헤어져 본, 마냥 설레기에는 후회와 미안함과 창피함 등등이 먼저 따라나오는 구애인 관계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튼, 이미 한 번 "끊긴" 회로에 불이 피고 있는 '나'는 정말로 큰일이 났다. "곧 폭발"하는데, "이제 나도 몰라"라며 회피까지. 어쩔 줄 모르는 상태의 최고봉을 달성하고 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후회에 후회를 쌓게 만든 '너'가 지금 내 앞에 있으니까. 이 상황에서 '나'가 가장 먼저 꺼내드는 것은 방어기제다.


나 얼마 전에 헤어졌어
꽤 유명한 집돌이고
전화도 잘 안 받고 싶어
그래서 친구 하나 없어
큰맘 먹고 나가 볼까 했어
별 기대 없이


"나 얼마 전에 헤어졌다"는 말을 구애인 앞에서 한다는 것. 이건 너와 헤어지고도 누군가 만날 만큼 잘 지냈다는 자존심, 혹은 '너'와 헤어진 사실을 꼭 남 이야기처럼 하며 동정표를 받아 보려는 심산, 둘 중 하나 같다. 전장즤 경우라면 헤어진 후 칩거 생활을 했다는 말은 누군가 만난 척, 을 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잘못된 수였던 것 같아 수습해보려는 말일 테고, 후자라면 잘 못 지냈다고, 혹시 너도 그렇냐고 묻기 위한 빌드업 비슷한 것이 될 수 있겠다.


마치 무슨 짠 듯이 짜여진 테이블처럼
내 앞에 네가 있었던 거야
그렇게 꾹 꾹 꾹 난 말을 아끼며
혹시라도 마주칠까 봐서
눈만 동동 굴리며
닮은 게 많지만 확신하지는 않을래
그 순간 포개진 두 손
왠지 99 Problems Go get it


짠 것처럼 내 앞에 네가 나타난 거지, 내가 널 찾아다닌 건 아니라고 굳이 말을 덧붙이면서, 시선은 여전히 '너'에게서 떼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이미 앞에서 누구인지 확신을 다 한 사람처럼 말해두고는 "닮은 게 많지만 확신하지는 않"겠다며 한발을 뺀다. 그러나, 모든 후회를 돌이키라고 세상이 응원이라도 하듯 손이 포개진다. 그리고, 떠밀린다. "Go get it!" 떠밀린 채 머리에 떠오른 말은 하나다. "망했다!" 이제 부정도 할 수 없고 발도 뺄 수 없다. 현실과 후회만 물밀 듯 밀려온다. 우리 사이엔 "낭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온전한 집중할 시간"을 갖자던 말도 그냥 핑계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결국 날 다시 좋아해달라 말하는 대신 '나'는 한숨처럼 뱉는다. "나쁜 놈 잊어라" 그러나 잊을 있을 리가. 머릿속에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양심적인 '나'와 비양심적인 '나'의 대격돌이다.


있는 힘껏 날 욕해 난 벌 받을 거야(양심)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아질 거야(비양심)
똑같은 놈 만나서 너도 똑같이 당해 봐(양심)
내 기분을 망치지 말아 줘(비양심)
Don't mess up(합창)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포개진 두 손에 이미 기분이 끝장나게 좋은데 이런 거 내가 똑같이 당하면 어떻겠냐고 역지사지를 시전하는데 기분 망치지 말라는 소리나 하고 결국 망치지 말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나란히 소리나 지르는 엔딩. 머릿속 양심과 비양심의 대격돌의 승자는 아무래도 비양심인 것 같다. 결국 끝까지 이렇게 외치니까. "폭망 폭망 좋아하게 됐어." 마지막까지 널 좋아해, 도 아닌 "널 좋아하게 됐"다며 수동태로 말하는 모양을 보면 얼마나 지금 심란한지 느껴진다. 널 좋아하게 되었다는(좋아한다는) 사실, 그러나 돌이키기까지 너무 많이 쌓인 나의 업보와 후회. 곡이 끝난 이후, 어떤 결말을 맞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에서 유회승과 이승협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해피엔딩인 세계관의 주인공 목소리라서, 울며불며, 좀 부끄럽고 창피하고, 눈도 좀 부어야겠지만, 재결합을 할 것 같긴 하다. 후회를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이런 순간에 "망했다"라고 외치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절대로 뒷말을 빼먹지 말자. "널 좋아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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