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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y 07. 2024

언제 그칠지 모르는 슬픔이지만

엔플라잉, 〈Autumn Dream〉




살아가다 보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공백이 되는 일이다. 그 공백을 견디고 잘 보내주는 방법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 이라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그 일들은 너무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적어둔 방법을 읽어도 영 내 것 같지 않은 말들도 많다. 오늘 노래인 엔플라잉의 〈Autumn Dream〉은 그 슬픔에 푹 잠긴 채로, 허깨비처럼 일렁이다 꿈결에 사라진 당신에게 토로하는 그리움이자, 그 목소리 중간중간 섞여 들어오는 당신의 간절한 소원에 대한 이야기다.





N.Flying

〈Autumn Dream〉(2019, 6th Mini Album '야호(夜好)')








낯익은 넌 내가 봤던 그때 네가 맞는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뒤적이는데
미안해 늦게 찾아온 널 잡기도 전에
깨어난 내 이불 속은 여전히 차갑게

달빛 아래 난 또 그 길을 잃고
초라한 거리도 너와는 다 괜찮았는데
난 지금 떠나지만 안개 낀 널 따라서
푸르른 숲이 보일 때 널 찾아갈 텐데
I'm waiting for

내 맘엔 비가 내리고 있어
얼마나 갈진 나도 잘 모르겠어
온실 속 화분처럼
난 외롭고 빛을 받을 널 Waiting for

우린 너무 아름답고 때론 비극적인 꿈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눈 감아야 네게 닿을 수 있을까
널 어둠 속에서 내버려 두기 싫은데
기억의 방 안에 갇혀 있는 날
Knocking on the door 날 떠올려 줘
Is this you

낯익은 넌 내가 봤던 그때 네가 맞는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뒤적일 텐데
미안해 늦게 찾아온 널 잡기도 전에
깨어난 내 이불 속은 여전히 차갑네
I'm waiting for

널 잃었던 날도 널 잊었던 마음도
꿈인 줄 알았는데
네게 닿은 감촉 그 뒤에 나를 감춰
도망치려 하는데
걱정 마 내 모든 검정들을 버려서
다시 눈 감으면 날 찾아와서 깨워줘

눈 감아야 네게 닿을 수 있을까
널 어둠 속에서 내버려 두기 싫은데
기억의 방 안에 갇혀 있는 날
Knocking on the door 날 떠올려 줘
Is this you

낯익은 넌 내가 봤던 그때 네가 맞는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뒤적일 텐데
미안해 늦게 찾아온 널 잡기도 전에
깨어난 내 이불 속은 여전히 차갑네

하루의 끝에서 널 기다려 서 있어
내 모든 검정을 버려서
다시 눈 감으면 날 찾아와서 깨워줘
너무 기다렸다고 너도 내게 말해줘
이 모든 검정을 끝내고
Knocking on the door 날 떠올려 줘
Is this you

낯익은 넌 내가 봤던 그때 네가 맞는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뒤적일 텐데
미안해 늦게 찾아온 널 잡기도 전에
깨어난 내 이불 속은 여전히 차갑네
낯익은 넌 몇 번이고 나를 두드리면서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나, 그리고 너. 노래에서 언급되는 사람은 딱 둘이다. 그리고 화자도 둘이다. 초반을 보면 화자는 '나' 하나인 것 같지만, 곡을 쭉 듣다 보면 "여전히 차"가운 이불 속에서 깨어난 '나'와 "날 떠올려" 달라고 말하는 '나', 둘이 보인다. 가을의 어느 꿈결을 헤매며 너를 잃은 '나'와 '나'를 두고 떠나야 했던 '너'는 서로 번갈아 가며 토로하고, 또는 속삭인다.


먼저 이 둘의 과거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널 잃었던 날도 널 잊었던 마음도 꿈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나'가 '너'를 잃은 지는 제법 지난 모양이다. "낯익은 넌 내가 봤던 그때 네가 맞는지" 의심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아마 '너'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건 아닌 것 같다. 잃는다는 말은 단지 마음을 돌이키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없던 때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는 '너'의 영원한 부재가 이미 전제 되어 있다. 종종 듣던 이야기처럼,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날이 되어서야 꿈에서 희끄무레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너'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래가 시작된다. '나'는 '너'를 묻은 줄 알았지만 묻지 못했다. 떠난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너'의 부재를 꿈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앓는 줄도 모르고 앓고 있는 이 상황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너'다. 예기치 못한 작별로 인해 슬픔으로 얼룩져 끝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반짝이던 시간이 있었음을 '나'에게 다시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있다. '나'의 마음에 들끓는 슬픔과 그리움이 죄다 얼룩처럼 번져 "검정"이 되어버린 알지만, "이 모든 검정을 끝내고" 자신을 "떠올려" 달라고 말할 만큼. 이 상황들을 생각하며, 가사를 둘의 대화처럼 다시 읽어보자. 전체적으로 '나'의 말들이 많기 때문에, 아래는 '너'의 말들만 따로 분리해 두었다.


눈 감아야 네게 닿을 수 있을까
널 어둠 속에서 내버려 두기 싫은데
기억의 방 안에 갇혀 있는 날
Knocking on the door 날 떠올려 줘


이 모든 검정을 끝내고
기억의 방 안에 갇혀 있는 날
Knocking on the door 날 떠올려 줘


"네게 닿은 감촉 그 뒤에 나를 감춰 도망치려" 하고, 꿈에서 마저 너를 붙잡지 못해 미안해 하는 '나'에게 '너'가 하는 말은 한결 같다. 나는 어둠 속에 너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고. 분명 우리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 문이 슬픔으로 잠겨, 검정으로 차올라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나, 기억의 방에 갇혀 있다고.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나를 잃던 날 대신 우리 함께 했던 날을 기억해 달라고. 그걸 떠올려 달라고. "이 모든 검정을 끝내고"나서, "기억의 방 안에 갇혀 있는 날" 떠올려 달라고. 그렇게 해야만 잃고서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떠났지만 떠나지 않았다는 역설을 '너'는 알고 있다. "낯익은" 얼굴도 희미하게 의심하는 '나'를 붙들고 또 붙든다. '나'가 그 역설을 이해할 때까지.


그렇기에 결국 이 노래는 '너'를 잃은 '나'가 뒤늦게 슬퍼하며 그리움을 토하는 노래이자, 이 모든 검정을, 슬픔과 괴로움과 그리움을 지켜보는 '너'가 '나'를 바라보며 끝없이 문을 두드리는 노래다. 그리고 본래라면 닿을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꿈에서나마 초월한다. 사랑하며 두드리는 노크가 '나'에게 닿는다. 몇 번이고 '너'가 두드리는 소리를 맨 끝에서 '나'가 듣는다. 몇 번이고 두드렸다는 걸, 그리고 낯익은 '너'가 진짜 '너'가 맞다는 걸 알아챈 '나'는 끝없이 미안해 하는 대신 "고마워"라고 말한다.


노래의 결말은 영원히 슬퍼하는 오래된 비극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가는 희망 쪽으로 기울어진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슬픔과 그리움일지라도, 아마 '나'는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혹 다시 검정에 빠지더라도 '너'는 언제든 다시 찾아와 '나'를 두드릴 것이다. 그것이 작별이자 살아가는 방법이리라. '너'의 부재는 '나'를 슬프게 할지언정 이제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 이제는 미안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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