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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y 22. 2024

잘 지내기 위한 인사로는 사랑해를

윤하, 〈사건의 지평선〉, 〈잘 지내〉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공간의 영역의 경계



주로 블랙홀이나 우주 팽창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되는 이 단어는 사실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빛의 속도로 수십 억년을 달려야 하는 거리를 두지 않고서도 목격된다. 같은 행성,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드넓은 우주에서 한 때 지울 수 없는 접점을 넘길 만큼 가까웠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종종 사건의 지평선이 그어진다. 겨우 한 걸음 차이인 것만 같은데, 그 선 너머에 내 목소리도, 내 열망도 닿을 수 없다는 것. 어떤 헤어짐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만 삶에는 사건의 지평선을 그을 만큼 비가역적인 작별도 분명 일어난다.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커다란 일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모르는 사이 손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진 친구가 그렇고, 서로를 위해서라도 돌아서야 하는 누군가가 그렇다.


그렇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을 향한 인사로는 무엇이 좋을까. 끊임없이 뒤를 돌아뷰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지금 내게서 떠나보낸 당신이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지금, 이 지평선 이후에도 잘 지내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잘 지내〉는 날이 분명 오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다.






윤하

〈사건의 지평선〉, (2022, YOUNHA 6th Album Repackage 'END THEORY : Final Edition')

〈잘 지내〉 (2022, YOUNHA 6th Album Repackage 'END THEORY : Final Edition')










〈사건의 지평선〉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에겐 우리가 지금 1순위야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 둔 것 같지만

기억나? 그날의 우리가
잡았던 그 손엔 말이야
설레임보다 커다란 믿음이 담겨서
난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울음이 날 것도 같았어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잘 지내〉




뭐랄까,
구름이 걷히고 운이 좋으면
투명한 조각의 무지개처럼
떠올라 볼 수 있었어
그 때 우리를

인연은
우연히도 다가와 떠나가고
노력할수록 상처가 되어서
이런 내가 됐지만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게
자랑스러워
가끔은 좀 막막해도 견디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 줄 알아
이젠 울지 않거든

How U doing
잘 지내, 그랬으면 해
실수였던 말들에
아프지 말고
돌아갈 수 없어도
기억하고 있어
마음 깊은 곳에 있어

Where're U going
지금쯤 함께였다면
좋았겠다 생각해
그래도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모쪼록 난 좋아
너도 잘 지냈으면 해

How U doing
잘 지내, 그랬으면 해
실수였던 말들에
아프지 말고
돌아갈 수 없어도
기억하고 있어
마음 깊은 곳에 있어

Where're U going
지금쯤 함께였다면
좋았겠다 생각해
그래도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모쪼록 난 좋아
너도 잘 지냈으면 해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게
자랑스러워
가끔은 좀 막막해도 견디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 줄 알아
이젠 울지 않거든








1. 최선을 다해 안녕


〈사건의 지평선〉을 시작하는 문장들은 작별이라기에는 여전히 화자인 그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토로다. "나에겐 우리가 지금 1순위"라는 말은 헤어짐과 영 거리가 멀어 보인다. 두려울 만큼 소중하고, "설레임보다 커다란 믿음"이 담긴 손을 기억하는 마음은 지쳐 나가 떨어지는 이별의 순간보다 사랑에 가깝다. 그럼에도 화자, 그는 분명히 말한다.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이라고.


처음부터 그는 이별을 위해 입을 뗐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당신을 보내기 위한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많이 그리워할 것도, 헤어지고 나서도 손에 남은 빛이 환하게 반짝여 눈물 흘리게 될 줄도 알면서 최선을 다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당신을 배웅한다. 이것을 헤어짐이 아니라 "새로운 길모퉁이"로 정의하며.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별에 필요한 것은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나 당신을 향한 미움이 아니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쏟아붓는 사랑이다. 축축해진 눈으로도 손을 흔들며 당신을 보내주는 얼굴. 회피하듯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포기하지도 않고, 이것이 정말 최선임을 알기에 헤어지는 순전한 마음에는 미움이나 덜 된 후회가 묻을 틈이 없다. 그렇기에 사건의 지평선에서 노래하는 그의 얼굴은 이별에도 불구하고 유독 환하다. 다시 이 날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도, 모든 것을 이 날에 쏟아부은 사람은 분명 젠가는 잘 지내게 될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이 이별을 미워하거나 후회하지도 않으며.



2. 잘 마른 삶


〈잘 지내〉에서 화자인 그는 말 그대로 잘 지내고 있다. 잘 지낸다는 말은 당신을 모두 잊었다는 뜻도, 우리 추억이 더는 의미가 없어 자유로워졌다는 말도 아니다. 여전히 그는 "그때 우리"를,  "구름이 걷히고 운이 좋으면 투명한 조각의 무지개처럼 떠올라" 볼 수 있다. 사건의 지평선에서 남겨둔 "아스라이 하얀 빛"이 아직 다 스러지지 않은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기억은 당신과 지금 여기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정하게도 만들지만, 그것이 슬픈 상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모쪼록 난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만큼, 정말로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지평선〉에서 있는 힘껏 사랑을 쏟아내며 작별했기에, 그의 삶은 못다한 사랑에 갇히지 않고 힘차게 흐르고 또 말라 지금 이곳에 와 있다. 그렇기에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있어 닿을 수 없는 당신이 잘 지냈으면 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묻는다. "기억하고 있"지만, 그 기억은 통증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당신은 내게 흉터가 아니라 반짝거릴 만큼 아름다웠던 사랑의 증거다. "가끔은 막막해도 좀 견디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 줄" 아는, "이젠 울지 않"는 어른이 되기까지 거쳐온 날들 속에는 분명히 당신이 있었다.


그러니, 당신이 더는 닿지 않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있더라도, 들리지 않을 안부를 전할 수 있고 전해야만 한다. 당신을 내 삶에서 도려내지 않고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 끝까지 사랑할 때, 비로소 언젠가 잘 마른 마음으로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된다. 그 최선을 통해 그는 당신과의 시절을 하나도 잃지 않게 된다. 


그러니 잘 지내기 위한 인사로는, 사랑해를.






¹두산백과, '사건의 지평선' 검색결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2534&cid=40942&categoryId=32290,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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