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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y 28. 2024

당신을 사랑할 준비

산들, 〈그렇게 있어줘〉






어떤 예감이 있다.

꿈에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스쳐간 당신을 언젠가 정말로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순간.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불현듯 알 것만 같은 찰나. 무어라 설명할 수 없고, 다른 이들이 듣는다면 허황되다고 하겠지만, 불현듯 이르는 벼락 같은 예감. 그런 시간은 단숨에 스쳐가기도 하지만, 그 예감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때로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언젠가 그 시간을 돌아보며,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다고, 어떤 역경이 와도 바뀌지 않을 결말과 장면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예감을 붙들고 내내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그렇게 있어줘〉의 화자는 오래도록 그 순간을 간직한다. 언젠가 사랑하게 될 당신에 대한 예감, 그리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기대에 가득 찬 눈동자로 당신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산들

〈그렇게 있어줘〉, (2016, 1st SANDEUL SOLO '그렇게 있어줘' )








산들, 〈그렇게 있어줘〉



아직 누군진 몰라
그려본 모습은 있지만
내 생각과 다른 모습에
못 알아볼까 걱정은 안 해

아무것도 못해도
하루가 아깝진 않아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야
빨리 만날 것 같아
그댈 알아볼 수 있도록

본적도 없는 당신과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그 날에 만나
언젠가 만날 우리가 될 때
모르고 지나치지 않게
그댈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있어 줘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해요
질투는 많이 나지만
그래도 행복하면 좋겠어

그대가 겪은 뜨거운
사랑과 그리고 차갑던 사람
날 만나게 된다면
기억도 안 날 거예요
그댈 알아볼 수 있도록

본적도 없는 당신과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그 날에 만나
언젠가 만날 우리가 될 때
모르고 지나치지 않게
그댈 알아볼 수 있도록

본적도 없는 당신과 함께
가늠할 수 없는 그 날에 만나
언젠가 당신 앞에서
내가 모든 걸 안아 줄 수 있게
그댈 알아볼 수 있도록

내가 널 꼭 찾을게
그렇게 있어 줘 그렇게 있어 줘
그렇게 있어 줘







화자인 그는 당신을 "본적도 없"고, "아직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확신이 있다. "못 알아볼까 걱정"조차 않으며, 내가 "언젠가 당신 앞에서 모든 걸 안아 줄 수 있게" 되리라는 것. 이 기이할 정도로 뚜렷한 확신은 그와 당신이 이전에 어떤 만남이 있지 않았을지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잊었어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너무 뚜렷한 것은 아닐지.


이 명료한 예감은 단지 그의 시선을 미래에 매단 채 현재를 허비하게 만들지 않는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당신을 기다리다 지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그는 씩씩하게 하루를 산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온다고 해서 당신을 곧장 만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신을 만날 그날에 하루 가까워졌다는 것. 예감을 현실로 만드는 아주 작은 순간들을 소중하게 쥐고 걸어가는 그는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 곧은 입매를 가지고 있다.


그는 혹여 지금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한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해요" 내 곁에 없는 지금의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얼굴도 보지 못한 당신을 사랑하는 그의 얼굴이 기다림에 닳지 않고 맑은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맑기 때문일 것이다. "질투는 많이 나지만 그래도 행복하면 좋겠"다는 고백은 나보다 당신을 더 위하는 사랑이자, 최선을 다해 오늘을 달려 당신에게로 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다. 어떤 사랑을 했든, "날 만나게 된다면 기억도 안 날 거"라고 외칠 만큼.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그렇게 있어주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의 전부다. 당신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날 기다려주기를. 살아만 있다면, 그저 살아만 간다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나를 기다리는 셈이 될 테니 살아가주기를. 지금 얼굴조차 모르는 당신을 위해, 그는 그저 당신의 삶을 사랑한다. 그는 아마 얼굴을 모르는 당신을 위해, 이름 모를 모두가 모쪼록 안녕하기를 바라고 있으리라. 다정하고 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유독 잘 웃게 되는 그의 얼굴은, 모두 당신을 사랑할 준비 과정이다. 사랑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렇게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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