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Ending〉
시간을 되감는 이야기들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애틋함이다. 나는 기억하지만 당신은 모르는 시간들, 나는 다시 반복하며 켜켜이 시간을 쌓겠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를 볼 때 생기는 저릿함. 마냥 사랑에 빠지고 마냥 행복해 하기에는, 되감아야 했던 이유가 되는 비극이 이미 존재하고, 당신으로 인해 슬픔을 겪어 봤을 사람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느껴지는 서글픔. 이것들에서 비롯되는 애틋함은 내가 시간을 되감고 헤매는 이야기에 유독 눈길을 주게 되는 이유다. 오늘 소개할 곡인 루시의 〈Ending〉 또한 그래서 오래 눈길이 간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 곡을 졸업과 작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문득 화자가 가지는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으로부터 켜켜이 쌓인 시간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곡의 화자는 어떤 시간을 헤엄치고 또 쌓아오고 있는 걸까? 청춘의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그에 대해 생각해본다.
봐 이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
전혀 슬프다곤 하지 않아
모두가 이대로
다시 못 볼 것만 같아서
더 숨기나 봐
네게 안녕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우린
영원한 안녕이라
이대로 이별이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오늘이 지나 네가 없는
내일이 찾아오면
분명 난 공허하고 외로울지 몰라
한없이 그리워
해도 괜찮아
다시 만날 걸 알아
그러니 우리 더 빛나자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저 너머로 사라지는 너는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질 않아
속으로 약속해
너희를 다시 만날 그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내게 안녕이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버렸지만 사실
영원한 안녕이라
이대로 이별이란
의미가 아니란 걸 알아
조금만 더 들려주고 싶어
다른 말론 설명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사랑을 담아
너를 부르게 해줘
불이 꺼지고 조용하게
모두 다 사라지면
분명 난 공허하고 외로울지 몰라
한없이 그리워
해도 괜찮아
다시 만날 걸 알아
그러니 우리 더 빛나자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Ending〉의 화자인 그는 아무래도 졸업식에 서 있는 것 같다. 여러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서로 가야 할 길로 흩어져야 하는 날. 어제까지만 해도 한 반에서 우르르 몰려다니고, 같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게 너무 익숙했던 이들을 떠나 이제는 낯선 사람들에게로 걸어가야 하는 그 시작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당연했던 만남이 이제는 힘을 들이고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일로 변한다.
그 또한 "오늘이 지나 네가 없는 내일이 찾아오면 분명 난 공허하고 외로울지" 모른다며, 자신 앞에 놓인 헤어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없이 그리워 해도 괜찮"다며 꿋꿋하게 몸을 편다. "다시 만날 걸" 안다고 확신한다. 이 확신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나는 힌트를 다음 부분에서 발견했다.
저 너머로 사라지는 너는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질 않아
속으로 약속해
너희를 다시 만날 그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다른 말론 설명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사랑을 담아
너를 부르게 해줘
그는 "저 너머로 사라지는 너"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다는 말은, 사실 익숙해질 만큼 네가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하는 것은 언제 다시 모일지 '너'와 함께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속으로 약속"한다. "너희를 다시 만날 그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일은 그저 막연히 기다린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도 이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확신한다는 것은, 이미 기다려서 '너'를 만나는 일을 해보았다는 뜻이 아닐까.
맨 처음, 최초의 졸업식 이후로 그는 다시는 '너'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안녕"을 하고 만 것처럼, "공허하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며 헤맸을 수도 있다. "불이 꺼지고 조용하게 모두 다 사라"졌던 날을 돌아보며 그리워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것이 "영원한 안녕"임을 깨닫고 아주 슬퍼지려는 그 순간, 기적처럼 다시 '너'를 만났다면. 졸업으로부터 십 년을, 혹은 십 년보다도 더 긴 세월을 보낸 후 눈을 떠보니 졸업식의 아침이었다면.
그가 어쩌면 아주 긴 타임루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꿈처럼 다시 한 번 졸업했을 것이고, 다시 "네가 없는 내일"을 살아가며 공허와 외로움을 견디다가, 또 다시 네게로 돌이키는 삶. 자신의 긴 인생을 반복하며 졸업하고, 다시 졸업하며, 너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반복이 결국 "우리만의 사랑"이다. 다시 너를 만날 수 없는 끝에 이르더라도 너를 다시 만나러 과거로 돌이키는 마음.
아직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더 빛나자고 말하는 그의 마음은 졸업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반복의 끝에는 결국 반복 없이, 지금껏 간직했던 너의 모습과 영원히 빛날 것 같던 날들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분명 첫 반복 때는 공허와 외로움으로 울던 그가 지금 이 졸업의 순간을 환히 여길 만큼 자랐으니까.
사랑은 때로는 우리를 이렇게 돌이키게 하지만, 곡 제목인 〈Ending〉처럼, 그는 분명 앞으로 걸어나가 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